빠이->치앙마이->방콕
태국에서는 치앙마이 빠이에 이어서 수도인 방콕에서의 여행을 계획했다.
앞서 치앙마이 편(태국, 치앙마이 3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방콕을 가는 슬리핑 기차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이동을 해야 했다.
지난번과 동일하게 미니밴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한 길을 멀미약으로 버티며 치앙마이로 이동했다.
낮에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저녁에 출발하는 방콕행 슬리핑 기차 탑승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배낭을 계속 멘 상태로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건 무리라서 미니밴을 예약했던 여행사에 배낭을 맡길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무료로 맡아줘서 가벼운 몸으로 더 기분 좋게 치앙마이에서의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계일주를 하는 일 년간은 다시 올 일이 없고, 나중에도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치앙마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갔던 곳들 중에서 좋았던 곳들을 위주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타페게이트를 지나 올드 타운 쪽에 치앙마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팟카파오무쌉(돼지고기볶음 덮밥)을 점심으로 사 먹고, 남편이 좋아했던 그래프(GRAPH)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셨다.
그리고 치앙마이의 특색 있는 골목길 사이사이를 눈에 새기듯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 다녔다.
좋았던 여행지를 떠나는 순간이 되면 한없이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에겐 새롭고 우리가 더 좋아할 수도 있는 여행지가 기다리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짐을 찾아 치앙마이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기차역 앞 편의점에서 기차 안에서 먹을 저녁거리를 산 후 슬리핑 기차의 2등석 객실로 탑승했다.
여행 전에 블로그 등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슬리핑 기차가 가격 대비 굉장히 좋은 컨디션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실제로 이용하니 더 깔끔하고 현대적인 객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통로 양쪽으로 일행끼리 마주 볼 수 있는 좌석에 앉아있다가 밤이 되면 트랜스포머처럼 침대로 바꿔주는 그런 시스템이었는데, 각 자리마다 전자제품을 위한 콘센트도 잘 갖춰져 있었다.
앉아있을 때는 가운데 테이블도 있어서 간단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식사를 할 수도 있었고, 당연히 에어컨도 시원하게 잘 나와서 잘 때는 오히려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자야 했을 정도이다.
다른 객실은 어떤지 궁금해서 우리 자리에 짐을 놓고 다른 칸들을 구경 다녔다.
(당연히 배낭은 서로 연결해서 자물쇠로 묶어놓았다. 여행 중 방심하면 짐은 언제든 우리 곁을 영영 떠나게 될 수 있다.)
대부분의 객실이 깨끗하고 에어컨도 잘 나오고 정돈된 느낌이었고, 식당칸도 음식보다는 스낵 위주의 판매를 해서인지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벌써 그 앞에서 커피 등의 음료를 주문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우리도 나중에 저녁 먹고 간식 사 먹으러 오자는 대화를 나누며 우리 좌석으로 돌아왔다.
밖이 어두워질 때쯤 기차의 직원분이 돌아다니며 좌석을 침대로 전환해 줬다.
슬리핑 기차라서 좌석이 빽빽하게 배치돼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좌석이 적은 편은 아니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전환하는 게 쉬웠을 수도 있지만, 일을 하시는 분 자체가 이 작업을 하루 이틀 해보신 게 아닌 베테랑스러운 느낌이 풍겨왔다.
침대를 전환하는 동안엔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서서 대기를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위, 아래 침대를 척척 전환한 후 침대 시트까지 깔고, 덮는 이불도 제공해 줬다.
정말 엄지 척을 날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침대 전환 후에는 커튼을 쳐서 개인의 프라이빗 한 공간도 가질 수 있어서 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짐을 따로 보관하는 장소는 없어서 침대 한쪽을 배낭에게 양보해야 하는 점과
침대 사이즈가 180cm 정도의 성인 남성에게는 짧아서 남편이 다리를 구부리고 있어야 했던 점 정도?
그래도 이동을 누워서 할 수 있고, 밤새 이동하니 숙박비도 절약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럽고 추천하고 싶은 이동 수단이다.
2층을 사용하던 내가 1층 커튼을 계속 들추고 남편을 귀찮게 하다가 1층 접근 금지령을 받은 것과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쌓으며 우리가 탄 슬리핑 기차는 방콕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