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당시의 중요한 기술적 혁신은 증기기관을 개발한 제임스 와트와 같은 개인 발명가의 몫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개인 발명가가 기술 개발 및 혁신을 주도하던 시대였다. 그들은 대부분 전문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창의성과 열정으로 혁신적 발명품들을 고안해 냈다. 당시 사람들은 발명가도 예술가처럼 타고나는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 그들은 예술가가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처럼 혁신적 발명품을 고안하기 위해 밤낮없이 투혼을 불살랐다.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술 혁신의 주역은 개인 발명가에서 기업 중앙연구소로 바뀌어 갔다. 그 역시 발명가였던 토머스 에디슨은 ‘산업 연구소(industrial research laboratory)’도 발명해 냈다[1]. 1876년 에디슨이 특허 매각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뉴저지에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인 ‘멘로파크 연구소(Menlo Park Laboratory)’를 설립한 것이다. 바야흐로 개인이 아닌 ‘조직에 의한 발명’의 시대가 열렸다[2].
이후 GE, AT&T, 듀폰, IBM 등이 멘로파크 연구소를 벤치마킹한 중앙연구소를 잇따라 설립하면서 기업 중앙연구소가 새로운 기술 혁신의 주체로 부상했다. 기업 중앙연구소는 풍부한 연구 인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개인 발명가가 할 수 없는 기술 혁신들을 많이 창출했다. 제트엔진(GE), 나일론(듀폰), 메인프레임(IBM) 등 수많은 20세기 최고의 혁신 제품들이 기업 중앙연구소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기업 중앙연구소의 역할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모기업의 경영 악화, 반독점 이슈[3]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대학, 스타트업 등 외부 혁신 역량을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연구 → 개발 → 생산 → 판매’의 자기 완결적이고 수직통합적인 연구개발 프로세스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협력 프로세스로 변해 갔다.
이에 따라 1980년대 후반부터는 개별 기업 단위를 넘어선 국가 차원의 기술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혁신시스템(National Innovation System, NIS)의 개념이 그것이다[4]. 국가혁신시스템은 기업, 대학, 공공연구기관 등 기술 혁신 주체와 이들을 둘러싼 수요와 인프라 요소, 제반 환경 조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혁신시스템은 기술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혁신 주체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혁신 친화적인 각종 제도와 환경을 구축하고 혁신 활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혁신 주체 간의 활발한 네트워킹 및 혁신 주체와 각 요소 간 상호 작용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림 2.2.1) 국가혁신시스템의 체계도[5]
국가혁신시스템 내에서 스타트업은 중요한 기술 혁신 주체의 하나이다[6]. 특히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장에서는 기존 기업을 대신해 스타트업이 새로운 혁신의 주역으로 부상한다.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이 대표적 사례이다. 애플이 창업한 1976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시장은 기업용 시장이 전부였다. 당시 IBM과 기업용 중형 컴퓨터 시장에서 경쟁하던 DEC의 켄 올슨(Kenneth Harry Ken Olson) 회장은 “가정에서 컴퓨터를 쓸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PC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애플은 1977년 세계 최초의 PC인 ‘애플 II’를 출시해[7] 성공을 거두며 PC 시장을 개척하였다. 또한 1982년 창업한 신생 기업 컴팩[8]은 1986년 IBM보다 앞서 386 PC[9]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1994년에는 IBM을 제치고 세계 PC 시장 1위에 올라섰으며 1998년에는 DEC를 인수합병하였다. 1960~70년대 컴퓨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IBM도 새로운 PC 시장에서는 신생 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맥없이 내주었던 것이다.
PC 시장에서 잘못된 대응으로 위기를 자초한 IBM
1981년 출시된 ‘IBM PC’는 1985년까지 약 300만 대가 팔려, 목표인 24만여 대를 훨씬 초과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IBM은 당시 애플컴퓨터, 오스본(Osborne) 등 스타트업이 주도하던 PC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자체 PC를 개발해 출시했지만,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후 PC 시장 역시 IBM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IBM은 PC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프로세서는 인텔, 운영체제(OS)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부 기업을 활용했는데, 이들과 독점 계약을 맺지 않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IBM PC가 성공을 거두자 인텔 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 OS를 탑재한 호환 PC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결국 IBM은 PC의 원형을 만들었지만, 호환 PC 기업에 주도권을 내주고 2004년 PC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에서는 흔히 기존 기업보다는 스타트업이 혁신을 선도하고 시장을 개척한다. 이는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이 서로 다른 특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혁신적 아이디어나 사업 모델을 시장에서 검증받고 상업화하기 위해 설립된다. 즉 스타트업의 목적 자체가 새로운 시장 개척인 셈이다. 이를 위해 시장의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을 과감히 감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의 태동기에는 제품의 표준적 형태, 즉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10]’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해 경쟁한다. 시장 태동기에 제품 혁신의 빈도가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지배적 디자인이 결정되면 시장은 성장기에 진입하고 제품 혁신의 빈도는 점차 줄어든다. 따라서 시장 성장기에는 혁신적 아이디어로 시장을 탐색(exploration)하는 것보다 이를 개선하고 활용(exploitation)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시장 개척자와 성장기 이후 시장 주도자가 종종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MP3 플레이어 시장은 1997년 한국 스타트업인 디지털캐스트가 개척했으나, 2005년 애플이 아이팟 나노를 출시한 이후부터는 애플, 삼성전자 등 기존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였다.
주: 세로축은 제품 혁신의 빈도와 산업의 총 생산량
(그림 2.2.2) 산업의 수명 주기에 따른 제품 혁신의 빈도 추이
한편, 기존 기업은 스타트업과 달리 새로운 산업이나 새로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기존 기업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게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특별할 경우가 아니면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에 자원을 선제적으로 투입하기가 어렵다. 즉, 기존 시장과 기존 고객 대응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1970년대 DEC는 기업용 중형 컴퓨터 시장에서 IBM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PC를 개발할 동기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PC 시장이 성장하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었고, 기업들의 PC 사용 증가로 기업용 중형 컴퓨터 시장이 위축되면서 결국 1998년 컴팩에게 인수되었다.
둘째, 현재 시장에서 기술 우위에 있는 기존 기업은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은 초기에는 성능이 당연히 열등할 수밖에 없는데,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열등성만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독자적인 ‘트리니트론(Trinitron)[11]' 브라운관(CRT) 기술로 전 세계 TV 시장의 절대 강자로 부상한 소니는 1990년대 후반 당시 CRT TV 대비 성능이 열세였던 LCD TV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가 2000년대 들어 시장이 LCD TV로 재편되면서 TV 시장의 주도권을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에게 넘겨주었다. 소니도 CRT TV 다음에는 평판 TV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그것은 LCD TV가 아니라 OLED TV일 것으로 확신했다. 실제로 2007년 소니는 OLED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기도 했지만 크기가 11인치에 불과해 제품 경쟁력이 없었다. 하지만 소니는 경영이 악화되면서 OLED TV의 대형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OLED TV 시장의 주도권도 한국기업에게 넘어왔다. 결국 소니는 TV용 디스플레이가 CRT에서 LCD로 넘어가는 TV 산업의 전환기에 전략적 판단을 잘못함으로써 TV 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이 같은 소니의 전략적 판단 착오에는 자사 기술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 혹은 자만심이 크게 작용했다.
셋째, 기존 기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를 시장 규모가 작다며 무시하기 쉽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에 계속 진출해야 한다. 참여하고 있는 기존 시장이 성숙되면 더 이상 매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롭게 형성되는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기존 기업의 눈에 들기가 쉽지 않다. 매출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령 신사업의 예상 매출액이 천억 원이라면, 매출 1조 원 기업에게는 현재 매출액 대비 10%이지만, 매출 100조 원 기업에게는 0.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매출 100조 원 기업에게는 천억 원이란 매출 규모가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태동하는 시장은 시장 규모 자체가 작아 처음부터 큰 매출 규모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은 태동기보다는 성장기에 있는 산업 분야에, 자체적인 신규 투자(greenfield investment)보다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인수합병이 신속한 시장 진입 및 빠른 기반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넷째, 기존 기업의 시스템 및 프로세스, 업무 관행 등도 새로운 혁신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어렵게 한다. 조직이 오래될수록 내부 프로세스는 그동안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반영해 자원 낭비와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지고 굳어진다. 따라서 의사결정을 하는 관리자들은 물론 협력 부서, 지원 부서 등 조직 내 이해관계자들 역시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위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내부의 깐깐하고 지난한 프로세스를 거치다 보면 아무리 혁신적 사업안일지라도 혁신성이 퇴색되거나 이미 한발 늦은 사업안이 되기 쉽다.
혁신기업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
시장과 기술의 전환기에 선도 기업들은 종종 정상의 자리를 수성하는 데 실패하며 시장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것은 한두 산업이 아닌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두루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고객들이 만족하는 제품(혹은 서비스)을 제공하고 시장 트렌드와 기술을 선도하는 등 성공적 경영을 해 오던 우량 기업들은 왜 실패하는가? 이는 널리 인정받는 탁월한 경영 방식이 사실은 항상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적절하지만 어떨 때는 부적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경영 방식이 기술의 전환기에는 기업의 선도적 지위를 상실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성공 기업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
경영 전략의 대가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이를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제품이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성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수용자(early adopter)들만 사용하는 틈새 제품이었다가 성능이 점차 향상되면서 대다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시장 주도 제품이 된다. 이러한 성능 향상을 존속적 혁신이라고 한다(그런데, 혁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시간이 더 지나면 기업들은 시장 요구 대비 과도한 성능의 제품을 출시하게 된다).
가끔 시장에는 주도 제품 대비 성능은 떨어지지만 새로운 고객 가치(value)를 표방한 제품이 등장한다. 메인 프레임이 주류였던 컴퓨터 시장에 등장한 PC가 대표적 사례이다. PC는 메인 프레임 대비 연산 능력은 굉장히 열세였지만, 작고 저렴하며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PC 역시 초기 수용자들만 사용했었지만 연산 능력이 향상되면서 컴퓨터 시장의 주도 제품이 되었다. 이러한 혁신은 기존 시장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파괴적 혁신이다.
이런 파괴적 혁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틈새 제품이고 수익성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을 갖는 우량 선도 기업들은 거의 없다. 기술 전환기에 거의 모든 산업에서 우량 기업들이 비슷한 실패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 <혁신기업의 딜레마> 속에 있는 원래 그림을 재해석해 그렸음.
(그림 2.2.3) 기존 주도 제품 vs. 파괴적 혁신 제품의 성능 궤적
하지만, 기존 우량 기업도 파괴적 혁신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첫째, 하위(low-end) 틈새 제품에 적합한 비용 구조를 갖는 별도의 독립 조직을 만든다. 둘째, 기존에 없던 시장이므로 틀에 박힌 전략은 지양하고 발견 중심의 기획(discovery-based planning)을 한다. 셋째, 기존 사업에 최적화된 프로세스나 가치 체계는 신사업 전개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사업 조직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넷째,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 기준은 성능만이 아니므로 주류 고객들의 제품 이용 행태를 면밀히 파악한다.
*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혁신기업의 딜레마>. 이진원 역. (서울: 세종서적, 2020).
< 참고 자료 >
[1] 경제사학자 존 스틸 고든(John Steele Gordon)은 산업 연구소가 비록 특허를 받을 수 없지만 에디슨의 많은 발명품들 중에서 최고 발명품이라고 평가했다.
[2] 연구소를 만들면서 에디슨은 사소한 발명은 열흘에 하나, 큰 발명은 반년에 하나씩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시 멘로파크 연구소는 ‘발명 공장(Invention Factory)’이라 불렸다.
[3] AT&T의 벨 연구소(Bell Labs)는 1984년 AT&T가 미국 정부와의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한 후 독립했다가 루슨트 테크놀로지를 거쳐 노키아에 인수되었다.
[4] 처음 국가혁신시스템이란 개념은 국가마다 기술 혁신 성과의 차이가 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즉, 국가혁신시스템의 개념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기술 혁신이 활발히 창출되기 위한 조건과 결정요인을 분석하려고 했다.
[5] S. Kuhlmann and E. Arnold(2001). RCN in the Norwegian research and innovation system. Background report in the evaluation of the Research Council of Norway, Vol. 12; 김윤종(2018).
국가혁신체제 관점의 과학기술기본계획 진단 연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p. 57.
[6] Kuhlmann(2001)은 ‘New, technology-based firms’로 표현했고, 김윤종(2018)은 이를 ‘신생기업,
혁신기반기업’으로 옮겼다. 여기서는 ‘혁신기반기업’을 의미가 비슷한 ‘스타트업’으로 바꿨다.
[7] 애플 I은 키보드, 케이스 등이 없는 반제품 상태의 제품이었기 때문에 완제품 형태로 출시된 PC는 애플 II가 최초였다.
[8] 컴팩은 창업 1년 만인 1983년 매출 1억 1천1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3년 차인 1985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1986년에는 최연소 기록으로 포춘(Fortune) 글로벌 500대 기업에 선정되었다.
[9] 인텔의 80386 CPU를 탑재한 PC 기종을 말한다. 당시 IBM은 80286 PC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PC에
80386 탑재는 시기상조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10] 시장에서 하나의 표준처럼 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제품 속성을 말한다. PC 시장의 ‘윈텔(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 + 인텔의 CPU)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11] 1968년 소니가 개발한 CRT 기술로, 기존 제품 대비 평면에 가까운 데다 화질이 우수해 전 세계 고급 컬러 TV와 모니터 시장을 석권했다. 트리니트론 TV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소니는 미국의 RCA를 꺾고 TV
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