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원이 지급되었습니다.
딸의 외할아버지는 시골에 사신다. 도시에서 살던 삶을 뒤로하고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꿈으로 지방으로 내려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시골의 삶이야 좋은 것도 많지만 불편한 것도 많다. 시골 생활을 즐긴다는 나도 도시에서 태어난지라 몇 가지 면에서는 항상 도시와 비교된다. 그중 큰 것이 바로 쓰레기 처리와 분리수거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종이류를 제외하고는 매일 분리수거가 가능하여 부지런만 하다면 집에 재활용품이 가득 차는 일은 없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어떠한가. 이것도 매일 배출이 가능하다.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5L짜리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니 며칠이면 가득 차서 버릴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몇 걸음만 걸으면 된다.
그러나 농촌의 시골 생활은 이런 부분에서는 빵점이다. 쓰레기 배출도 쉽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도 쉽지 않다. 그러니 여전히 쓰레기를 소각하는 경우도 흔하고, 음식물은 밭에 묻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 집에도 설치하지 않은 음식물 처리기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아빠는 불편하지 않다 하시니 결국 몇 년째 보류 중이다. 일반 쓰레기와 분리수거용품은 모았다가 차로 5분 넘게 가야 하는 지정된 곳에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빠는 집 한편에 모아 놓았다가 가득 차면 한 번에 버리는 경우가 많아 친정에 내려간 김에 분리수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분리수거 품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소주병이다. 적적한 시골 생활에 단비처럼 방문하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빈 소주병이 탑처럼 쌓인다. 자주 버리지 않으면 초록색 병 위로 흙먼지가 내려앉고 거미줄이 생기니 바로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낑낑 거리며 무거운 소주병을 차로 나르는 내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소주병, 팔 수도 있어."
"아빠, 진짜?"
"마트 갖다 주면 한 병에 100원이야. 갖다 팔고 생기는 돈은 가져."
"아싸."
빈병 보증금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100원 받자고 소주병을 챙겨서 마트에 가져간 적은 없다. 100원 벌자고 집 안에 쌓아두느니 100원을 포기하고 분리수거하는 편이 더 편하다. 그러나 이곳에는 버려지지 못한 반짝이는 초록병이 1,2병이 아니라 한 박스도 넘는다. 딸 아이랑 셈 공부도 할 겸 세어본다.
"빈 병 하나를 팔면 100원이야. 모두 팔면 얼마일까?"
"36개고, 100원씩이니까 3600원."
"어우, 잘했어."
몇 군데 마트에 전화해 보니 구입한 영수증이 있어야지 받아준다거나 특정 요일에만 수거한다는 곳이 많아 가까운 마트가 아닌 차로 10분이나 가야 하는 마트에나 팔 수 있었다. 트렁크에 싣고 가서는 빈 병과 보증금이 교환되는 모습을 보니 신이 났다. 공돈이 생겼다. 아이도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를 한 손 가득 받고서는 싱글벙글이다.
"이걸로 아이스크림 사 먹어도 돼?"
"그래. 이거 할아버지가 주신 거야. 감사하게 생각해."
그 순간 번득이며 이 단어가 생각났다.
장학금.
"할아버지 덕분에 생긴 돈이니까 이제부터 외할아버지 장학금이라고 하자. 오늘은 첫날이니 맛있는 거 사 먹고, 다음부터는 저금하자."
그 이후로도 우린 할아버지의 장학금을 꽤 자주 받았다. 청소도 하고, 돈도 벌었다. 아빠도 들으시더니 재미있으신 모양이다. 장학금도 좋지만 술을 많이 드시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그 버릇으로 재미 삼아 집에서 생기는 소주병도 모아 집 앞 편의점에 갖다 주곤 한다. 보통은 1,2병인데 오늘은 꽤 모아두었더니 두둑하다. 장바구니에 넣으니 걸을 때마다 짤랑짤랑 소리가 난다. 마트에 가져다주니 요즘 보기 힘든 동전을 손에 쥐어주신다. 받은 동전은 곧장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의 손에 쥐어준다.
"이건 아빠 장학금."
600원의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딸 사랑, 손녀 사랑도 좋지만 술은 좀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