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7월 13일에 보도된 '커피 마시는 교사'에 대한 민원이 담긴 기사를 보니 힘이 탁 풀려 얼마간은 기운을 차릴 수 없었다. 학기말 업무 처리로 가뜩이나 바쁜데 아무것도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젠 하다 하다 교사는 커피 마시는 것으로도 탈탈 털리는구나.'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며 예상을 뛰어넘는 신박한 민원에 이젠 두 손 두 발 다 들었소, 하고 항복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이 댓글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래도 댓글에서 학부모가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매번 선생님을 탓하는 댓글을 보며 우린 숨만 쉬어도 욕을 먹는 존재라 느꼈는데 이번에는 우리 잘못 아니라는 댓글 하나에 위안을 삼는 우리가 꽤 가여웠다.
그러다 7월 18일 초등교사가 6학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전치 3주의 피해를 입고 인터뷰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함께 울었고, 함께 분개했다. 모자이크 처리 된 그 선생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동료 교사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많은 학년을 맡으며 팔을 물려보기도, 다리를 맞아보기도 했다. 올해도 우리 학교에서는 몇 건의 교사 폭행 사건이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느 선생님은 사과도 받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본인이 맞은 것보다 학생을 제지하려 팔을 잡는 과정에서 학생에게 손톱자국이 났을까 오히려 걱정했다면 이것도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지?'가 아니라 이 사건으로 수많은 주변의 사례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이것은 특수한 일이 아니고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통의 교실 모습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여기까지였어야 했다.
바로 다음날 7월 1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 차 신규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 뒤에 보도된 기사를 보며 우리는 분노했다.
'얼마나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으면 학교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서이초 교사가 말하지 않은, 말하지 못한, 그 어떠한 이야기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와 다름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이제 참을 수 없다. 이러한 교실 속에서 우리는 가르칠 수 없고, 미래를 꿈꿀 수 없다. 교사 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학생의 미래, 교육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미 교실 붕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우리는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중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교실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내 일이 버거워 어린 막내 교사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전국의 교사들은 근조화한을 보내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참을 수 없었다. 슬픔이 교사들을 휘감아 버렸다. 힘겹게 수업을 끝내고 서이초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길게 줄지어선 우리를 보니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올 일이 전혀 없는 강남 어딘가의 골목길에서 우리는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참고 또 참았던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곳에 갔고,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우리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모이고 있다. 굵직굵직한 교원단체의 힘도 빌리지 않고, 초등 교사가 자발적으로 서울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집회와는 거리가 먼 선생님이 맨 땅에 헤딩하며 집회를 주최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보신각에서, 오늘은 광화문에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하루였지만 우리는 검은 물결로 대응했다. 질서 정연했고 의연했다. 자랑스러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우리가 외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지만 당당히 목소리 낼 수 있어 뭉클했다. 탈출만이 답이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변화라는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