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1페이지에 있는 관용표현 중에서 퀴즈를 낼 거야. 선생님이 뜻을 말할 테니 표현을 맞혀봐."
사이나 관계가 틀어지다.
"절교!"
"아니, 관용표현 중에서 답해야지. 관용 표현이 뭐라고 했죠?"
"둘 이상의 낱말이 합쳐져 그 낱말의 원래 뜻과 다른 새로운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요."
"그렇지, 절교는 단어가 한 개잖아. 그리고 1페이지에 있는 표현이야."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땡!"
"하루에도 열두 번?"
"그건 방금 '매우 자주'라고 배웠잖아. 얘들아, 생각하고 말해야지. 아무거나 말하면 안 돼요."
수많은 오답 끝에 결국 첫 글자 힌트를 준다.
"이것은 금으로 시작해."
"금이 가다!"
"딩동댕!"
이럴 일인가 싶게 꽤 먼 길을 돌아서 답을 맞혔다. 또다시 등장하는 라떼 시절에는 속담이나 관용구를 많이 알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모른다. 관용표현보다는 줄임말과 외래어, 비속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작년에 3학년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상황이라 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 있는 속담 만화책을 학급에 비치해 놓기도 했다.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려는 찰나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응?"
"저 이거 엄마한테 들어봤어요."
"뭘 들어봤다고?"
"금이 갔다요."
아이는 기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이야기한다.
"제가 게임도 몰래 하고 숙제도 안 하고 그래서 엄마가 저한테 신뢰에 금이 갔다고 말했어요."
"아...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네!"
"엄마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심각한 거 아니야?"
아이도 그 당시에는 매우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잘못했다고 반성을 했겠지만 지금은 천진난만하게 발표를 한다. 의도치 않게 학생의 가정생활을 엿봤다. 냉기가 감도는 방에 있는 엄마와 아들이 떠 오른다. 듣던 아이들도 나도 그런 적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나온 김에 핸드폰 사용이나 게임 사용 시간을 줄이라고 한 마디 덧붙인다.
관용표현을 익히니 아이들과 하는 말에 재미가 생긴다.
친구가 돈을 빌려가서 안 갚는다고 하소연하는 아이에게는
"봐봐, 선생님이 친구 사이에 돈은 빌려주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고 했잖아.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알지? 지금 이런 상황이야. 아이고."
모둠 활동을 하는데 교실 저 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얘들아, 우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자."
아이들이 배운 표현을 까먹지 않고 상황에 끼워 맞추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