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2평 남짓한 텃밭에서 가장 열심히 생산을 하고 있는 식물은 상추이다. 물 주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가 주는 물을 먹고 쑥쑥 자라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래 텃밭 상자나 외곽 시골 학교에서 학교 텃밭을 경험해 보면서 상추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상추는 딱 5 포기만 심으려고 했다. 만약 상추를 무려 10포기쯤 심는다면 아마 상추만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무서운' 상황에 놓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소비되는 것보다 배 이상으로 자라는 상추는 참으로 성장이 빠르다. 그러다 텃밭의 공간도 남고, 남으면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눠줄 요량으로 10포기쯤 심었더니 이 녀석이 제대로 힘을 발휘 중이다.
쌈 채소보다는 샐러드 용으로 자라던 상추가 이제는 제법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랐다. 계획한 그때가 드디어 왔다. 원래는 씻지 않고 주는 것이 보관의 측면에서 더 낫겠지만 얼마 전에 산 야채 탈수기를 실험한다고 상추 한 바구니를 통째로 씻어 버렸다. 흙을 털어내고 깨끗하게 씻어 야채 탈수기로 물기도 최대한 제거한 뒤 지퍼백에 담았다. 샐러드용이 더 적합해 보이는 유럽 상추만 골라 담으니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구 주기도 애매한 이때떠오른 사람은 1인 가구인 A. 상추 이만큼 때문에 고기를 구울 리 없어 보이니 치킨 샐러드를 해 먹으라고 집에 있던 냉동 치킨 텐더까지 냉동백에 따로 담아 다음날 전달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협찬에 A는 고마워했다.씻은 거니 최대한 빨리 먹으란 당부와 치킨 샐러드로 먹었으면 좋겠다는 미션까지 주고 쇼핑백을 넘겨주었다.상추 몇 장 주고 참 많은 말을 한 것 같아 뒤돌아서며 머쓱하기도 했다.
몇 시간 후 이른 저녁시간에 카톡에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예쁜 그릇에 연둣빛 상추와 치킨텐더가 담긴 사진이었다. 몇 천 원이면 사고 남을 상추를 받고서 플레이팅까지 해서 맛있게 먹고 후기까지 남겨주는 다정함에 또다시 입꼬리가 승천이다. 맥주가 빠진 것이 보는 내가 아쉽지만 산뜻하고 맛있다니 기분이 좋다. A는 상추를 줘서 고맙다지만 나는 이렇게 예쁘게 먹어주는 모습에 더 고맙다.
아마 A가 블로그를 한다면 맨 마지막 문구는'상추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