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매번 지더니만 이젠 남편이 가까스로 겨우 이겼다고 고백할 만큼 딸아이는 체스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나서나 주말에는 남편을 졸라댔다.
남편은 "오늘 아빠 힘들어.", "주말에 하자."등으로 빠져나간다. 그럴 때면 아이는 뾰로통해져서는 핸드폰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서 혼자 체스 게임을 한다.
간혹 내게도 체스하자고 하지만 엄마는 체스를 둘 줄 모른다는 대답에 막혀 다시 풀이 죽는다. 어릴 때 (나의) 아빠에게 장기를 배워서 한 때 재미있게 했지만 이제는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체스랑 장기랑 비슷하기도 해서 마음만 먹으면 못 배울 리 없건만은 귀찮은 엄마는 체스 둘 줄 모른다는 핑계로 이 상황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대기 위해서 체스를 배울 생각이 없다.
그러다 아이가 시골에 간 김에 외할아버지에게 체스를 전수해 드렸다. 아빠는 귀찮은 내색 없이 싱글벙글하며 손녀가 하나씩 알려주는 체스 규칙을 귀담아 들었다. 때론 손녀의 잔소리도 들었고, 어이없이 지는 탓에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셨다. 아이는 게임 속 세상이 아닌 체스판을 두고 사람과 마주 앉아 손으로 움직이는 체스를 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외할아버지가 집에 놀러 오셨다.
"우리 체스하자.
"할아버지가 연습해 왔지."
아이는 생각지도 않았던 체스 이야기에 신이 나서 구석에 있던 체스판을 꺼낸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딸은 체스 한판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나의' 아빠가 '내' 딸과 체스를 두기 위해 연습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뭉클해진다. '내' 딸도 이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정성껏 '나의' 아빠와 마주 보고 재미있게 게임을 한다. 둘이 소곤거리며 체스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한다.
두 사람이 내 시야에 함께 들어오는 이 모습에 두 사람의 다정함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행복해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최고다. 최고의 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