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10살 아이가 모여 가위바위보를 한다. 그중에 발을 쿵쿵 구르며 제일 큰 목소리로 "가위바위보"를 외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나다. 여기서 잠깐! 이 행동은 놀이에 끼고 싶은 아줌마가 세상 신나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으나 남들이 몰랐을 뿐. 그리고 나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비춰지는 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내가?"
"우리도 애들이랑 같이 게임하는 거야?"
몇 번의 동문서답 끝에 엄마들 눈에는 가위바위보하는 아이들 틈에 껴있는 나를 보고 애들 놀이에 끼고 싶은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물풍선 게임이라 내가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래 봬도 판단력을 갖춘 어른이다. (가끔은 없지만)
"아, 그거 박자 맞추느라고. 여럿이거나 꼬맹이들이 끼어있으면 한 번에 박자를 못 맞추거든. 그래서 내가 말하면서 발도 굴러주면 웬만하면 한 방에 잘 내."
"역시 선생님은 다르네. 우린 그것도 모르고 네가 제일 신난 줄 알았어."
사실 노하우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1학년을 맡았을 때 매번 늦게 내는 아이와 다툼이 생기면 해결사로 등장하여 이 방법 저 방법 해보며 깨달은 방법이다. 의아해하는 엄마들에게 설명하다 보니 내가 이럴 때 이렇게 했었구나, 하고 나중에서야 자각한 것이다.
그리고 순간 서글퍼진다. 교사의 전문성이 고작 가위바위보 한방에 하는 법이라니. 남들은 20년 차가 되면 업무를 꽉 잡은 베테랑에 멋진 이름의 직급도 가지게 되던데, 아직도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아이들과 학년, 학교 사정에 따라 바뀌는 업무에 적응하기 바쁜 미생일 뿐이다. 거기다가 새로운 정책은 느닷없이 나타나서 너희들은 전문가니 어떻게 좀 알아서 아이들을 지도하라고 으름장이니 매번 새로운 걸 배우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다. 20년째 신입사원이랄까. 존경해 마지않는 베테랑 같은 선생님도 이런 현실에 '우린 왜 맨날 헤매고 있냐'며 자조 섞인 푸념만 늘어 놀뿐이다.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아이 외롭지 않게 하기.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게임에서 가까스로 지기.
선생님 흑역사 대방출해서 아이 자신감 높이기.
교사들의 이렇게 귀여우리만큼 사소하고 작은 노하우가 쌓여서 교실을 평화롭게 하고, 학생들을 세심하게 지도할 수 있는데 이런 능력은 별거 아니라고 치부된다. 밖에서는 압사 사고도 학교에서 안전교육을 안 해서라거나 교내 킥보드 분실사건이나 계단에서 3-4칸씩 뛰다가 혼자 넘어지는 일에도 선생님 탓이라고 손가락질받으니 점점 무기력해진다. 사회 문제를 뭐든 학교 교육 탓으로 돌리면 해결된다는 '학교만능론'이라는 Meme이 인터넷에 떠도는 실정이니, 이 경력이 되도록 전문가는커녕 숨만 쉬어도 욕먹는 존재가 된 것 같아 점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가끔 내가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 박사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매서운 눈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처방을 내리면 아이들이나 부모는 홀린 듯이 변한다. 그와 함께 아이, 부모, 교사는 행복해진다. 그녀처럼 '매직'을 부릴 수 있는 요술 지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물론 오은영 박사님도 30명의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는 다를 거라고 간간히 항변해 보지만 어쨌든, 그 능력 사고 싶다. 얼마면 되니?
오늘도 이러한 나만의 신공을 부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 하루들이 모여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노하우를 쌓는다.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아마도 평화로운, 무탈한 학교 생활이겠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교사 모두가 매일매일이 무탈하면 좋겠다.
1.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 보슬보슬 개미 똥구멍멍이 류의 노래는 금지다. 가장 담백한 가위바위보를 무리 중에 가장 크게 외친다. 2. 구령에 맞춰 오른발을 들었다 내리며 세차게 구른다. 박자를 지배해야 한다.
(반올림한) 20년 경력직 노하우를 방출해 버렸다. 나의 알쓸신잡이다. 알아두면 쓸모는 있으나 신비할 만큼 작고 소소하고 미천한 잡학사전. 3893297번째 노하우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