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깜빡여도 잘생겼잖아
스물셋, 연기 학원에 등록했다.
연기를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게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리라는 생각에 꽂혀있다보니 캐릭터를 넘나드는 연기라는 분야까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연기로 내면의 무엇을 끄집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학원비는 비싼 편이었지만 그간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아둔 돈으로 충당했다. 기차를 타고 2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을 일주일에 두 번 갔다. 내가 들어간 반은 신설된 반으로, 반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연기를 배워본 적 없는 생초보들이었고 연령대는 스무살부터 마흔살까지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배우지망생이었기 때문에 다들 외모가 출중했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도 연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외모지상주의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배우=출중한 외모'라는 보이지 않는 공식이 있는 것 같다.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학원을 통틀어 주목받는 사람이 우리 반에 있었는데, 다름아닌 모델 비율의 신체와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
지금은 꽤나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나는 연기학원을 석 달 정도 다녔으니 그 시간동안 같이 밥을 먹거나 한 반에서 연기 연습을 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단지 그가 눈만 깜빡여도 잘생겼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연기학원을 그만두고 몇 달 후 식당에서 부리또를 먹으며 무심코 시선을 둔 티비에 그가 나오기에, 카톡으로 그에게 티비에 나오는걸 봤다고, 축하한다고 했더니 고맙다며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고 답을 받았었다. 배우와 잠시나마의 인연으로 카톡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는 이후 워낙 많은 작품을 찍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고, 나는 나대로 내 꿈을 이뤘다. 드라마에서, CF에서, 커다란 전광판에서 그를 마주할 때면 잠시나마 연기를 배웠었던 그 때를 떠올린다. 연기는 아직도 다시 배워보고 싶은 것 중 하나다.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캐릭터에 몰입해볼 수 있는 것은 연기가 지닌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남은 생애의 언젠가는 취미로나마 연기에 다시 도전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