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스갯소리 May 30. 2024

교사는 내 꿈이었다

사랑하지만 무력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품은 교직의 꿈을, 다시 초등학교로 돌아와서 실현하게 되었다.

나는 그림책에서 웃긴 장면을 강조해서 읽어줄 때 꺄르르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을 사랑한다. 같이 훌라후프 대결을 하자고 다가오는 아이들의 도전 정신을 사랑한다.

작은 곤충의 죽음을 애도하며 땅에 묻어주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사랑한다. '오늘 급식에 마라탕 나온다'며 환호하는 아이들의 발랄함을 사랑한다.  선생님은 스무살이냐고 묻는 아이들의 엉뚱함을 사랑한다.

짧은 순간이나마 아이들의 삶의 한 자락에서 디딤돌이 되어 있는 내 일을 사랑한다. 밤 늦게까지 수업 자료를 만들고, 주말에는 교육 관련 연수를 찾아 다닌 이유는

좋은 선생님이 되는게 나의 보람이자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신규 교사로 시작해 어느덪 부장 교사를 맡게 된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몇 차례의 우울증을 겪었다. 타인과 잘 지내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자주 싸웠고, 몇몇 학부모님들은 자녀의 친구가 자녀를 '바보'라고 부르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정도에도 학교 폭력이 아니냐며 분노했다.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수차례 상담을 해도 '내 자녀만을 위한' 민원은 1년동안 이어졌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교실로 찾아오거나, '아이 아빠'를 동원해 밤에 성난 성인 남자의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성난 목소리가 다수의 학부모님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진데 꼭 그 몇 사람으로 인해 힘겨워졌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담임으로서 책임져야 마땅한 '아이'가 아니고서야 그 부모님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가 일말의 흠집없이 자라나기를 원하는게 부모님의 뜻이라면 더이상은 아이도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함께 청소할 싫다고 떼쓰는 아이에게 청소를 시킬 없었고, 답지를 통째로 베껴 적는 아이에게 훈계할 수 없었고, 하기 싫어하는 학습활동을 끝까지 해보자고 지도할 없었다. 나는 이걸 방치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방치되는 아이는 고스란히 다른 자녀들의 피해가 된다. 그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둬야 할지 말지 수없이 헷갈리는 까닭은 교사로의 의무감이, 공연히 상처받고싶지 않은 연약한 마음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들이 그 갈림길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봐왔다.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힘든 고객을 상대할 때 메뉴얼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차원에서 해결이 안되면 선임을 부르고, 선임 차원에서 해결이 안되면 매니저를 부르고,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그냥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들어줘라.'는... 사회 분위기가 민원에 취약해진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고객이 왕'이고 '목소리 큰 사람 뜻대로 해주는' 서비스 정신을 밀어붙인 결과라고 본다. 지난 몇 십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 얼마만큼의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까. 결과적으로 어느 직종에서건 무리한 요구는 끊어내면서 직원을 보호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으면 사회 전반적으로 생산성은 떨어지고 분노 게이지는 상승할 수 밖에 없다. 너도 나도 참지 않으며, 모두가 지는 게임. 그 미련한 판을 계속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이전 08화 괴짜 방청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