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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May 29. 2024

괴짜 방청객

목청 보이도록 웃어보자

나는 리액션이 아주 작은 사람이다. 소심했던 성격 탓인지 어릴 때부터 나의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걸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20대 초반까지도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으로,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내 기본값이었다. 그걸 타파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된 일이 방청객 아르바이트였다.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대형 방송국이 있는 지역까지 이동해야 했으므로, 버스로 왕복 3시간은 이동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통은 일산 MBC에서 녹화를 했는데, 생방송 중에 관객석에 앉아 울거나 웃는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종류의 방청이 있는가 하면, 이미 녹화한 예능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리액션만 입히는 종류의 방청이 있었다. 물론 방청객 입장에서 더 실감나고 좋은 것은 생방송 방청이었다.


방청을 갈 때마다 만나는 익숙한 방청객들은 대부분 그 주변에 거주하는 중년층이었는데, 하루에 방청 2~3개를 연달아 하시는 듯 했다. 대기 시간에는 가방에 싸온 간식들을 주섬주섬 꺼내 서로 나눠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방청 아르바이트는 이미 그들의 일상인 것 같았다.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와서 외롭지도 않고, 박수치고 웃으면서 돈도 버니까 참 건강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2시간 짜리 방청 하나에 밥 한 끼 사먹을 돈 정도 밖에는 안되어서 생업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중에 은퇴를 하면 방청객으로 용돈도 벌고 껄껄 웃으며 노년의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방청객 알바를 하면서 내 리액션은 좀 나아졌을까? 글쎄, 순간적으로 웃고 박수치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로써의 철저한 자본주의 웃음이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리액션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그래도 뭐, 덕분에 먼 훗날 목청 보이도록 껄껄 웃는 괴짜 할머니가 되리라는 꿈을 갖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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