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꼼하고 구체적이기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새롭고 엉뚱한 생각을 곧잘 해낸다. 그 상상을 현실에 펼쳐놓기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라, 그림으로나마 재미있게 표현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디즈니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으로 현실 이상의 세상을 구현해 놓은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고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은 아니라도 내 일상을 담아낸 간단한 일러스트를 쓱쓱 그려보는게 은근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림을 그릴 때 자꾸만 제동이 걸렸다. 어린 시절에는 잘 못 그려도 흰 종이만 있으면 여러 장 그려냈는데, 잘 그리고 싶다는 강박에 도통 선을 이을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것이 알면 알수록 구도 및 비율이 어떤가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사람을 그리려면 인체 공학적인 부분까지도 이해해야 하는, 머리쓰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생각보다 골치아픈 분야였다. 잘 그리고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벽에 부딪쳤다. 혼자서 할 수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커리큘럼이 긴 학원을 수강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취미 위주의 원데이클래스를 부단히 찾아다녔다.
일러스트, 인물화, 웹툰, 아크릴화... 다양한 원데이클래스를 다녀보니 그림의 분야마다 각각의 매력이 다 달랐다. 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던건 아크릴화였고, 웹툰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다 보니 손 떨림 방지나 채색 등이 수월했고, 오로지 연필을 사용해서 그리는 인물화는 손이 많이 갔지만 완성해 가는 재미가 있었다. 분절적으로 배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건 아쉽지만,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때 원데이클래스의 경험들이 좀더 생생한 미술 수업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것은 이론과 경험. 그림은 나보다 아이들이 더 잘 그린다.
여유가 생기면 학교에서 있었던 아이들과의 소소하고 귀여운 에피소드들을 간단한 툰으로 그려 남겨두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들여다 보면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다만 간단한 툰을 완성하는데만 몇 시간이 걸려 자주 그리지 못하는게 아쉬울 뿐이다. 이제는 텍스트만 입력하면 AI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린다던데, 그래도 나는 상상과 기억을 담은 못난 그림 미련하게 더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