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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Jun 20. 2024

이유없이 좋은, 노래

노래와의 길고 질긴 인연

드라마 '구회말 투아웃'에서 내가 오래오래 품고 있는 명장면이 있다. 한 친구가 기타를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친구에게 '너는 기타로 먹고 살면 걱정없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픽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좋은 걸 왜 업으로 삼냐?"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대로 남겨두는 것. 어쩌면 그게 현명할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업으로 삼지 아니한, 좋아하는 취미 하나 쯤은 있을거다.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와 노래다. 업으로 삼을만한 뛰어난 재능도 아니라서 그저 좋아하는대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기에, 가게에 따라가서도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렸다. 공터를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면 시간이 곧잘 가곤 했다.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몰입해보면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낼 수 있어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는 학예회마다 고정적으로 노래를 했고, 아이들은 내 롤링페이퍼에 '노래 잘하는 아이'라는 칭찬을 곧잘 써주곤 했다. 중학생 때는 시험이 끝날 때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에 갔다. 당시 우리 동네 노래방에서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노래방을 이용한 시간동안 부른 노래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줬는데, 그걸 집에 갖고 와서는 내가 부른 부분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가 밤마다 캠퍼스에 울려퍼지는 선배들의 통기타 연주 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고, 가끔은 무대에 섰다. 그리고 직장에 나와 밴드까지 결성해서 한동안 열심이었으니 나도 꽤나 노래와 인연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어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보컬은 바른 호흡과 발성에 감정과 기교를 과하지 않게 얹어 소리로 표현하는 일이었다. 호흡과 발성을 교정받는 일은 노래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사람들마다 익숙한대로 노래를 하지만 애초에 호흡과 발성이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노래할 때보다 훨씬 힘들게 부르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우리 몸은 자꾸 익숙한대로 하려고 하지만 제대로된 호흡과 발성을 익히고 나면 '노래라는걸 내가 하던 것보다 좀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거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고나면 감정과 기교를 얹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참 어렵다. 감정적인 부분은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주관성이 강해서 본인이 느끼는대로 표현하는데 감정이 없으면 밋밋하고 억지로 쥐어짜면 듣기에 부담스러워진다. 특히 기교를 신경쓰면서 감정을 얹는다는건 한 손은 위아래로 왔다갔다 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은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영 마음먹은대로 안되는 일이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표현하는건 기교를 숨쉬듯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될 때나 가능해진다. 이 좋은 걸 왜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하나 싶어 나는 그냥 기교를 빼고 부르기로 했다.


지금은 남편과 가끔 코인노래방에 몇 천원 들고 가서 노래 대결을 하고, 교회에서 금요일마다 찬양팀으로 서고 있다. 은퇴해서는 나무 그늘 아래서 기타나 치면서 베짱이처럼 노래 부를 꿈마저 꾸고 있으니, 아마 나는 평생 노래와의 인연을 이어가리라 싶다. 노래하는 이유는, 정말로 그냥 좋으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덧붙일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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