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목욕탕, 나의 수영장
목욕탕에서 잠수 좀 해본 사람
내 수영의 시초는 뭐니뭐니 해도 목욕탕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쬐끄만 내 손을 잡고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나는 혼자 욕탕 속에서 한참을 놀곤 했다. 물에 바가지를 엎어 바닥까지 눌러보거나, 숨을 참고 잠수를 하거나, 물장구를 치다 보면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그러다가 엄마의 손에 붙들려 때를 밀어야 하는 순간은 곤혹이었지만, 목욕을 끝내고 나와 손에 요구르트 하나 쥐어지면 다시 모든게 즐거워졌다. 내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적 목욕탕에서 물과 친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을 정식으로 배워본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교대 커리큘럼에는 국수사과음미체가 골고루 섞여 있어서 수영, 볼링, 스키, 야영 등의 체육 관련 수업을 듣게끔 되어 있었다. 수영 강습은 수영 수업에 좀더 잘 참여하고 싶어서 따로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 앞 상가에 있는 작은 수영장에 등록하여 수영 강습을 받았다. 처음에는 의욕에 불타 새벽반을 신청해서 6시에 강습을 받았는데, 새벽에 강습을 받고 나면 몸이 노곤노곤해져서 강의 시간에 꾸벅꾸벅 졸곤 했다. 몸이 적응하는 중이겠거니 하고 지켜보다가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강습 시간대를 오후로 조정했다. 모든 것이 좋아졌다.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나보다.
수영을 하면서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나는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편이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는 오히려 겨울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이유를 추측하건대 수영 후 온탕에서 몸을 풀고 나와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라고, 근거는 없지만 혼자서 그렇다고 결론 지었다.
뿐만 아니라 피부가 좋아졌다. 수영장 물이 소독물이라 대부분 피부가 안 좋아지면 안 좋아졌지, 좋아졌다는 경우는 못 들어봤는데 나는 수영장에 갈수록 피부가 좋아졌다. 수영이 이렇게 나한테 잘 맞는 운동일 줄이야.
대학생 때는 강습을 꾸준히 받을 금전적 여유까지는 안되어 몇 개월 받고 중단했지만, 취업을 하고나서 다시 소그룹 강습을 받으면서 수영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엄마는 목욕탕 가는 취미를, 나는 수영하는 취미를 잠시 잃어야만 했다.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당신에게 무척 소중한 목욕탕 쿠폰을 헐값에 팔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기사와 책들이 쏟아져 나왔을 땐 우리가 사랑하는 목욕탕이며 수영장을 다시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다행히도 취미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다시 돌아온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