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발령지는 성남이었다. 출퇴근길 신분당선과 버스를 이용하여 왕복 3시간이 걸렸다. 학교가 언덕에 있어 아침마다 얕은 산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체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나는 출근과 동시에 에너지가 급속도로 줄었는데, 오후 2시경이 되면 거의 방전이 되어 퇴근 때는 껍데기같은 몸으로 많은 인파들 속에 다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야한다는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하철역 인근에 있는 헬스장에 다니는 것이었다. 계속 이런 체력으로 내 몸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생애 첫 PT를 받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을 먹고 몇 군데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데스크에서는 능숙하게 몇 개월에 얼마라고 할인가를 안내해 주었지만, 아무리 '파격적인' 할인을 받아도 내게는 거금일 뿐이었다.
'에잇, 눈 딱 감고 내 건강을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자.'는 자기 최면 속에 6개월 할부로 선결제를 했다.
트레이너는 나보다 어린듯 했지만, 몸은 거대한 사람이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첫 10분은 러닝머신으로 몸에 서서히 열을 올려 운동할 준비를 한다. 그러고나면 본격적으로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근력 운동을 한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기구들을 이용해 힘을 썼다. 트레이너의 카운트다운은 '더이상은 무리인데!'하는 나의 한계점을 한참 넘어서곤 했다. 그는 일관되게 상냥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 돈 내고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와 나는 자꾸만 성이 났다.
운동을 할 때 성이 나는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10회는 채워야 했다. 체력이 좋아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빌어먹을 10회를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나가던 어느날 나는 앓아눕고 말았다. 체력 증진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내게는 너무 과했는지 한동안 열이 오르고 몸살이 지속되어 몇 회를 남겨두고 운동을 갈 수 없었다.
몸을 회복하고 헬스장에 가는 것은 더 많은 인내심을 요했다. 운동하고 얻은 몸살의 트라우마에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지불한 돈의 액수를 되뇌이며 겨우 겨우 남은 PT 횟수를 마저 채운 후, 해방감을 느끼며 헬스장을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까지 PT 6개월 분납이 카드 할부로 빠져나갔다. 한참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등산이나 수영이 훨씬 잘 맞는 사람이었다. 비싸다고 다 좋은게 아니니 플렉스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찾아보자고, 그 시절의 나에게 슬쩍 말해주고 싶다. 그러고보니 어른들한테 이미 수없이 들어봤던 말인거 같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