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천으로 만든 소품, 홈패션 등을 떠올리면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라 내 취향은 영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인들이 취미로 재봉틀을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다고 할 때도 그런가보다, 했다.
심드렁하던 대상에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건 의외의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재봉틀로 만들었다는 보틀백을 꺼냈는데, 처음 보는 형태였다. 가방 안에 접어서 넣고 다닐 수 있고 컵홀더로 활용할 수 있는, 지저분해지면 세탁해서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는 신박한 물건이었다. 나는 신박한 물건을 보면 속수무책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걸 재봉틀로 만들었다고? 재봉틀로 이렇게 신박한 것도 만들 수 있구나.'
나의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재봉틀을 배우기 시작하자, 왜 이제껏 그 매력을 몰랐나 싶게 재봉틀에 빠져들었다. 디자인을 얼마든지 내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어 생각보다 유연한 작업이었다. 재봉가위로 천을 서걱서걱 자를 때도 재미있고, 재봉틀 기계로 두두두두 바느질을 순식간에 완성하는 것도 신기하고, 몇 시간 안에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뿌듯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끝을 거쳐 만든 결과물이니 더없이 소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낡아서 안 입는 옷들, 목이 늘어난 양말, 철 지난 가방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에코백 두 개 정도는 나올 옷감이야.'
'저 로고를 살리면 멋있겠는데.'
쓸데없는 소모가 판을 치는 세상에 이렇게 재활용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건 멋진 일이다.
자켓이 가방이 되고, 양말이 인형이 되는 창조적인 이 작업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진즉에 배웠다면 지금쯤 꽤 능숙하게 내 옷도 만들어 입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날 재봉틀에 대한 나의 편견이 후회될 뿐이다. 알게 모르게 내게 얼마나 많은 편견이 있는지.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이가 들 수록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물을 대할 때는 물론, 사람을 대할 때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찰떡같은 분야나 인연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