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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Feb 14. 2022

나의 타디스를 찾아서


집에서 일을 하다 며칠 전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지난 일요일에 갔을 때는 사람이 많아서 그냥 나와야했는데 평일이라 비교적 한산했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1인석에 앉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220V 탭과 케이블 탭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 자리에는 모두 세트처럼 하나씩 탑재되어 있다. '오~!' 별 것 아닌데도 이런 센스 있는 행동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노트북이 오래 되어 완충을 하고 나와도 몇 시간이면 금방 방전된다. 10% 아래로 내려갔을 때의 초조함이란... 카페를 가면 충전 멀티탭부터 살피는 것이 습관이다. 여기는 바 자리마다 설치되어 있어서 여유있게 세팅을 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커피 맛보다 분위기 때문에 스타벅스를 찾게 된다. 재즈와 뉴에이지 음악이 흘러나오고,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무신경함이 좋다. 지점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집 근처 스타벅스는 소란스럽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일에 집중이 잘 된다. 혼자 작업하러 온 사람도 많다. 집에서 일할 때는 윗집의 발소리가 크게 들려서 일부러 음악을 틀어놓는다. 스타벅스에서는 사람이 더 많아 시끄러운데도 소음이 신경에 거슬리지 않고 외롭지 않다. '나같이 혼자 일하러 온 사람이 많구나' 생각하며 힘을 낸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옆 테이블 이야기도 듣는다. "000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와 생크림 카스테라 나왔습니다아~" 직원의 주문 알림 안내를 들으며 요즘 핫한 메뉴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어찌나 목소리가 상냥한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건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캐나다에 머물던 시절 친구가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친구가 음료를 제조하고 주문을 받는 모습을 뿌듯하게 관찰하다가 지루해지면 옆 테이블 이야기를 들었다. 다 알아들으면 뿌듯해하고, 못 알아듣는 단어들이 많으면 시무룩해하면서 내 영어실력을 테스트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한국에 돌아오니 캐나다 생활이 그리웠다. 고향도 아닌데 향수병에 걸렸다. 생각해보니 스타벅스는 한국에도 있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차이티라떼와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흘러 스타벅스에서 일하던 친구는 은행원이 됐지만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한 번은 친한 언니와 시애틀 여행 중 스타벅스 본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카페모카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생각보다 맛은 평범했다. 스타벅스 본점일 뿐 맛이 특별한 건 아닌데 원조 맛집같은 깊은 맛(?)을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걸까. 내게는 커피 맛보다 그 앞에서 만났던 버스킹 밴드가 기억에 남는다. 햇살 좋은 어느 여름날 커피를 마시고 나와 열정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모자에 돈을 넣었다. 공연이 끝나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했는데 갑자기 나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러지 싶어 기다렸더니 나에게 다가와 아이가 내기에는 많은 돈이라며 돈을 거슬러주었다. 나를 어리게 본 걸 기뻐해야할 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황당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이다.



팬데믹이 끝나고 자유롭게 오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혼자 추억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스타벅스를 가봐야겠다. 홍콩에서 먹었던 맥모닝이 그리워 집 근처 맥도널드를 찾듯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여행을 못 가는 지금은 소중한 공간이다. 맛은 다르지만 과거가 그리울 때 찾게 되는 나만의 타디스(영국 드라마 <닥터후>에 등장하는 시공 초월 이동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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