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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16. 2021

첫 취업 제안

그리고 최악의 제과점

                 학교 구직박람회 날 참여를 계기로 내 정보가 구직폴에 등록되어 견습생을 찾는 업체로부터 심심치않게 연락이 왔다. 대부분의 경우 내 이름과 내 억양만으로도 외국인이라는 것을 짐작한 상대방이 오히려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는 게 다반사이다. 간혹 면접을 보러 오라 연락이 오는 곳들 중에는 까르푸, 오샹과 같은 대형 마트의 파티스리 파트도 있었는데, 대기업에서는 성인 견습생도 비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나같은 조건의 구직자에게도 기회가 돌아오곤했다. 다만 대형마트이다보니 생산량이 동네 빵집에 비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고, 많은 부분이 기계화 되어 있어 견습생 입장에서는 파티스리 기초를 배우기에는 부족한 환경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전통적인 제과점은 아니지만 한 번 와서 면접 봐볼래?' 전통적이지 않은 제과점이라고 했을때, 첫 번째 스타쥬를 했던 에밀리처럼 독특한 컨셉의 빵집이거나 대형 마트와 같이 커다란 체인일거라 생각했다. 잘 안들리는 전화기를 부여잡고 낑낑대고 주소를 받아적었다. 외국어로 전화통화를 하는 건 여전히 자다가도 식은땀 나는 일이다.


        주소를 지도 어플로 검색해보았을 때,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서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출근할 때 뚜벅이인 나에게 적어도 자전거로 출근할만한 거리인지는 중요한 사항이다. 물론 가까울 수록 새벽에 5분 더 잠을 잘 수 있으니 삶의 질에도 꽤나 중요한 사항! 하지만 이도 저도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면접 날 가게 앞에 도착해보니 한적한 동네의 상가 한 가운데에 빵집이 있었다. 미용실, 부동산, 피자가게, 그리고 빵집! 빵집 유리창에는 연중무휴, 새로 주인 바뀌었음! 2 플러스 1 광고가 진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보니 사장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님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기다리는 김에 가게를 둘러보니 한켠에는 빵과 케익들을 팔고 있고, 오른쪽 끝에는 피자를 팔고 있는게 아닌가? 피자가게로 잘못 들어왔나 싶었는데, 분명 빵도 팔고 있으니 제대로 찾아 온 건 맞는 듯 싶어 사장이 전화통화를 끝내길 기다렸다. 전화통화를 끝낸 사장님이 내게 손짓을 하여 다가가니 그의 붉어진 손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파티스리 사장님들의 손은 마디마디가 굵고 상처가 많은 못생긴 손이다. 그 역시 그러했다. '우리 파티스리는 사실 100% 냉동 제품만 판매합니다. 간혹가다 과일 타르트는 우리가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학교에서 배워온거 실습삼아 연습해서 팔아봐도 되요. 물론 만드는게 냉동으로 쌀 경우에만. 여기서 일해보는 거 괜찮겠어요?' 갑자기 솔직하게 말하니 할말이 없다. 어느 업체이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라 깊이 생각 안하고 오는 일요일에 일해보기로 하고 나왔다. 피자가게에서 빵집을 한다? 이 낯선 컨셉은 뭘까?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은 코로나 봉쇄기간에 유일하게 돈을 번 업종은 테이크 아웃을 주로 하는 피자가게와 빵집이었다. 2년여의 수차례에 걸친 봉쇄기간 동안 배달이나 테이크아웃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레스토랑들은 직격탄을 맞은 반면 동네 피자집, 케밥집, 빵집 만은 타격이 덜했다. 피자가게를 하던 사장님은 코로나 기간 동안 모은 돈으로 오래 전에 딴 제빵 자격증도 있겠다, 폐업한 빵집을 인수해 피자가게와 동시에 운영하려는 계획을 실행중이었다. 여러모로 걸리는 점은 많았으나 겪어보고 거절해도 되는 거니 부딪혀 보자라는 심정으로 일요일에 일을 하러 왔다. 


            아침 7시에 도착해보니 츄리닝 바지와 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사장님과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한 똑같이 생긴 어린 아들이 나와 빵을 굽고 있었다. 물론 냉동생지를 오븐에 굽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일하기 싫은 표정이 가득한 아들을 사장은 사랑 가득한 눈으로 다그치며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도착해서 손을 씻으러 싱크대에 갔을 때 설거지 통에 가득한 음식물 쓰레기와 파리떼 때문에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냉동실에서 미리 꺼내 놓은 조각 케익들에도 파리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이걸 정말 팔 수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사장이 다가와 케익을 잘 진열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진열대에도 검은 먼지가 가득, 꺼내 놓은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생기 읽은 케익들에 살구잼을 덧바른다. 냉동실에 이미 한번 구워졌던 빵과 냉동 생지가 섞여 있고, 피자 재료들도 제대로 밀봉되지 않은채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니 식품업 초보자인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청소를 해도 검은 때는 사라지질 않고, 간혹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객들이 빵을 사갈 때면 붙잡고 '제발 여기서 사지 마세요!'라고 말리고 싶었다.         


            모히칸 아들 녀석이 자꾸만 내게 김정은에 대해 물어보는 걸 물리치며 4시간 동안 청소만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앞에 시커만 봉고차 4대가 서더니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사장님의 가족들이었다. 청소를 하고 있던 내게 사장의 어머니로 보이는 히잡을 쓴 할머니가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웃으며 아랍어로 뭐라뭐라 하신다. 마음이 따뜻해 보이시는 분이라 못알아 들었지만 어쨌든 '메르씨'라고 답했다. 

        이 모습을 본 사장이 내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당장 내일 계약서에 사인하고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승합차를 타고 가족들과 우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난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내 가족에게 절대 먹이고 싶지 않은 케익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까지 자격증을 따야하는 걸까. 아님 내 조건에 부합하는 유일한 가게는 이런 곳인 걸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스타쥬를 하며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돌아온 답은 모두 Non이었다. 그런 가게는 곧 폐업할 수도 있고, 배울 게 하나도 없고, 중간에 업체를 바꾸는 게 더 힘든 일이라며 모두가 반대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고민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1년을 더 기다려야하니까, 어쩌면 내가 제과학교에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날 하필이면 두 번째 스타쥬를 했던 Cyprien에서 연락이 왔다. 아쉽지만 다른 사람을 뽑게 되었다고. 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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