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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Jun 02. 2022

불어 숫자는 c'est difficile !

5, 100, 50, 500

        초등학교 고학년 때 영어를 처음 배웠던 내게 가장 헷갈리고 어려웠던 부분은 숫자를 영어로 표현하는 거였다. 예를 들어 13과 30 thirteen과 thirty는 들어도 헷갈리고 말하면서도 헷갈렸다. 아일랜드 캠프힐 생활을 시작으로 영어권 거주 기간이 늘면서 한국어 다음으로 영어가 가장 편한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수 개념은 단순히 언어가 는다고 제대로 머릿속에 잡히는 건 아닌가 보다. 영어로 십만 단위를 넘어가면 밀리언이 공이 몇 개였더라, 밀리언 다음은 뭐였더라... 하고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을 속으로 되뇌어야 겨우 '아, 이 정도 금액이라는 거구나' 감이 잡힌다고 해야 할까? 

 

        왜 내가 문과이었어야만 했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이 고질적인 숫자 멀미는 불어를 배울 때도 발동했다. 숫자 5는 Cinq 쌩크, 100은 Cent 썽, 50은 Cinquante 쌩깡뜨, Cinq cent 쌩썽이라고 말하는데, 툴루즈에서는 '엉' 발음을 '엥'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서 100도 5처럼 쌩으로 들릴 때가 많다. 눈으로 읽을 때는 분명히 다른 숫자임에도 들을 때나 말할 때 어찌나 헷갈리는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사수가 부르짖는 밀가루 몇 그람, 설탕 몇 키로를 잘 못 알아듣는 건 아닌지 긴장하며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내 어려움을 알아챘는지 간혹 수어처럼 손가락으로 힌트를 주곤 한다. 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것 같은 제과제빵 일도 사실은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 실력만큼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 중의 하나이다.


        특수학교에서 교육과정 관련 회의를 할 때면 친했던 선생님들도 날을 세우며 대립하는 건 시수에 관한 거였다. 일주일에 몇 시간을 한 교과에 배정하느냐의 문제는 이 교과가 학생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척도이기도 하고 그만큼 중요 과목인지 가치를 부여하는 문제이다. 수학, 영어, 체육, 이료 등등 교사들의 부전공에 따라 맡을 수 있는 교과목이 달라지니 어쩌면 밥그릇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고. 제과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소양 교과에는 불어, 수학, 과학, 지리, 역사, 도덕, 체육, 영어 등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학생들은 이 과목들을 수강하지 않아도 되어 1년 만에 졸업이 가능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과학교에 입학한 10대 학생들은 이 교과목들을 수강하고 졸업시험도 통과해야만 파티시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유럽 외 고등학교 졸업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라 나도 십 대 학생들과 이 수업들을 고스란히 다 배우고 있다. 처음에 이 수업들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시간낭비 같아서 좌절했지만, 한국과 프랑스의 교육환경이 워낙 다르다 보니 그 다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돈도 벌면서 학교도 다니게 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훗날 프랑스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학업적인 부분도 잘 케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다.  


        제과 제빵이 적성에 맞건 안 맞건 우리 반 학생들을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을 참 싫어하고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때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 것이 기술을 배우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과학교 입학 후 초반에는 수학 과학 수업이 늘 공강이었는데, 그 이유는 수학 전임 선생님의 병가 때문이었다. 그리고 임시 선생님이 채용되었고 그 후로 수학 과학을 새로운 선생님이 가르치게 되었는데, 첫 수업만에 왜 전임교사가 병가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체육이나 실습시간에는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학생들이 수학 시간만큼은 '나는 수학을 증오해요!'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반은 엎드려 자거나, 휴대폰을 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옆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선생님께 혼이 나거나. 그러다 소리를 지르며 지쳐 떨어지는 건 오히려 선생님이었다. 심지어 학생들은 선생님을 몇 분만에 소리 지르게 하는지 내기를 걸 정도였다. 사실 제과학교 수학은 산수라고 말해도 될 만큼 무척 쉽다. 숫자를 어떻게 읽고 쓰는지부터 시작해서 단위 변경, 넓이, 부피, 분수, 비율, 확률 정도만 다루고 CAP 자격시험도 실생활과 밀접한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 때도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고 실습에 비해 CAP 합격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계산기로 분수 연습문제를 푸는 짝꿍. 초등학교 때 구구단은 외우는 걸까? 내 눈을 의심했다. 


                오히려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프랑스 수학의 특이점 때문이었다. 수표 쓰기 문제 같은 경우엔 한국에서나 프랑스에서 수표를 써본 일이 없기도 하고 불어 철자가 헷갈려서 틀렸다. euro 다음에 s를 붙이지 않아서 감점!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소수점을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사용하고, 천 단위마다 쉼표를 찍지 않는다. 나로서는 1,000은 당연히 천인데, 여기서는 1.0을 뜻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한국에서는 쓰지도 배우지도 않았던 dm, dam, hm 단위들. cm와 m 사이에 dm이라는 단위가 있다는 것도 프랑스에 와서 처음 알았다. 액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cL이나 dL, daL이라는 단위도 마찬가지. 

수학교재. 수표 쓰는 법이나 단위변환 표를 사용하는 법을 서른 넘어 처음 배웠다... 

                이런 단위변환표 같은 경우에는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서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면 하나 같이 착하고 똘똘한 아이들인데, 왜 이렇게 선생님들을 못살게 구는 거니?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재밌게 수업을 하면 좋을텐데...  전동업자로서 안타까움이 든다. 나도 조만간 5와 100을 구분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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