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와 그의 와이프가 연애할 시절부터 우리는 무척 친하게 지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와이프인 언니와 더 절친이 될 정도였다. 언니가 지우를 가졌을 때쯤 내가 이탈리아로 오게 되었는데 송별회 자리에서 술에 취한 나에게 잽싸게 출산선물을 사달라고 링크를 보낸 친구의 스킬 덕에 나는 지우의 대모(God mother)가 되었다. 미처 자세히 확인하지 못하고 취기와 허세로 결제해버린 그 링크에 담긴 선물은 무려 '스토케' 유모차였어서 너무나도 자연스레 대모이자 최고의 이모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달리 시작한 인연이라 그런지 다른 조카들보다 유난히 애정이 가는 지우였다. 그 조그마한 아기도 내가 자기를 이뻐하는 걸 아는지 유난히 날 잘 따랐다. 지우가 태어나고 나서 우리는 더욱더 한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는데 일 년에 한 번 가는 한국 방문에도 부모님이나 동생집보다 지우네 집에서 더 오래 머물렀을 정도였다. 평소에 여행을 잘하지 않고 겁도 많은 내 친구가 유럽까지 이제 17개월밖에 안된 금지옥엽 딸내미를 데리고 올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우리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으리라.
이번에는 반대로 내 친구가 술에 취해있을 때 내가 비행기 티켓링크를 보냈고 언니와 나의 합동작전에 의해 비행기표 결제가 무사히 이루어졌다.
이렇게 2018년 3월, 비수기를 틈 타 지우와 친구 부부가 피렌체에 입성했다!
비행기를 타는 동안 다행히 컨디션이 좋아 큰 고생은 없었다고 했다. 피렌체에서 보는 친구 부부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정말 반갑기도 했다.
우리 이제부터 뭐할까?
지우는 정말 유럽 체질이었다. 동양인 아기를 자주 보지 못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귀여운 한복을 입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지우를 보고 연신 'Bella Bella'를 외쳤다. 자기 예쁘다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지 밖에 한번 나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쇼맨쉽도 좋아서 사람들이 예쁘다고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궁둥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춤을 췄다. 주위로 사람들이 다 둘러싸는 바람에 피렌체 다른 버스킹 팀들은 다 백수가 될 위기였다. 어찌나 텐션이 높던지 성인 세 명이 17개월짜리 아기 발걸음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피사의 사탑 앞에 소풍을 갔을 때는 마치 유럽 패밀리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드넓은 잔디밭에 누워서 여유를 즐기고 있으면 자기 세상인 양 사방팔방 지우가 뛰어다니고 가끔 우리한테 와서는 비행기를 태워달라고 했다.
육아에 지쳐있던 언니와 몇 년간 휴가다운 휴가 한 번 없이 가게일만 하던 친구도 진심 여행과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아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
이렇게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역시 너무 어린 나이이기는 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아이가 신난데에 집중해서 하는대로 내버려 두어서 그랬던 걸까. 친퀘테레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전날 밤부터 갑자기 아기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지우가 그때까지는 한 번도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왔던 탓에 이런 고열을 부모도 처음 겪어봤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나도 피렌체에 오고 나서 병원이나 응급실에 갈 일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시에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밤 우리는 이 먼 타국 땅에서 네이버에 의존하여 '아기 열 내리는 법'을 끝없이 검색해 보았다.
밤을 새워 물수건으로 아기 몸을 닦고 챙겨 온 해열제를 교차 복용시키면서 아이 옆을 떠나지 않았다. 24시간 여는 약국 같은 건 당연히 없어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며 꼬박 밤을 새웠다. 이 날의 내 친구 모습은 내가 이때까지 알던 철없고 망나니 같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눈물 고인 눈으로 자기 딸을 돌보며 약국 문이 여는 시간이 되자마자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뛰어나가서 해열제를 사 오는 모습, 와이프가 지칠까 봐 따로 끼니를 챙기고 놀랐을 나까지도 배려하며 쉬라고 하는 모습에서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로 그리고 가장으로 성장한 내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 내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잠 한 숨 못 자고 간호한 덕분인지 지우는 큰 다른 문제 없이 열이 내렸고 곧 자기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이가 아프기 전까지만 해도 지우가 자고 나면 나랑 와인 한잔, 맥주 한잔 하면서 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신구 선생님에게 토로하듯 서로 티격태격하던 그 둘은 어느새 큰 시련을 이겨내고 더 끈끈해진 전우애와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아니 사실 나까지 포함 세 명이... 내가 왜 첫 열나는 밤까지 같이 겪었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남은 날들은 조심히 그래도 아쉬움 없이 잘 보내려고 노력했다. 한 번의 큰 위기가 더 있었는데 지우의 애착 인형인 '예삐'가 너무 더러워서 자는 동안 몰래 세탁을 하려고 했는데 그새 잠이 깨서 드럼세탁기 안에 돌아가고 있는 '예삐'를 보고 '예삐 죽는다고' 세탁기 앞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 사건이었다.
2주 남짓 같이 지낸 시간 동안 나는 부모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고 그럼에도 지우와 친구 부부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은 탁하우스에서의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두 달쯤 뒤인 5월에 하온이네 가족이 손님으로 찾아왔다.
이 분들은 연고는 전혀 없고 탁하우스의 3인 가족실을 예약하고 오신 일반 손님이었다. 가족인 건 알지만 구성을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앙증맞고 귀여운 하온이를 보자마자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지우는 친구 딸이라 사실상 손님이라 할 수는 없었는데 탁하우스 최초이자 최연소인 14개월의 아기 손님이 등장했던 것이다!! 아마 지우가 다녀가기 전이었다면 좀 더 당황했을 것 같기도 한 게 사실 지나가면서 본 거 말고는 14개월쯤 되는 아기를 직접 볼 일이 많이 없었던 터라 이런 민박집에 어린 아기가 잘 지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모든 시설이나 환경이 성인 숙박객에 맞춰져 있어서 다칠 위험도 있고 다른 방에 손님들도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우가 다녀간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지 모든 걸 잘 케어하고 도울 수 있을 것 만 같은 자신감이 마구마구 솟아났다.
하온이는 지우보다도 더 작았고 귀엽고 눈이 없어질 정도로 활짝 눈웃음을 짓는 예쁜 아기였다. 승무원 출신인 하온이의 엄마는 결혼과 임신 전에는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녔었는데 임신하고 나서부터 하온이 14개월까지 2년 넘게 움직이지 못한 게 너무 힘들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번 유럽여행을 감행하셨다고. 남들이 안 하면 내가 먼저 해보지 뭐! 라는 마인드였던 것 같다. 하온이의 아빠는 누가 봐도 딸 바보에 애처가 느낌이 물씬 나는 분이셨다. 부드러운 미소와 가족을 아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두 분 다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여행 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생글생글 웃으며 너무 잘 다니던 하온이도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성인들도 유럽여행의 돌길을 만보 이만보 걷고 다니다 보면 금방 지치고 몸살이 나는데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아기들은 오죽하겠는가. 다만 아기들도 새로운 곳에 와서 신기한 경험을 하는 흥분에 아프거나 불편한 걸 잘 표현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두 번째 경험 이어서인가.
어떤 약을 사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도와드릴 수 있었다. 이 먼 타지에 와서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나도 겪어보았기에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아이의 약을 사다 주고 구토를 하면 시트도 갈아주고 수건과 물수건을 가져다주는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침착하게 대응해주는 내 모습에 하온이 부모님은 큰 고마움을 느끼셨던 것 같다. 다행히도 하온이도 하루가 좀 지나고 나서 금방 열이 내렸고 괜찮아진 모습으로 베니스로 떠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하온이 부모님에게 이번 여행은 아쉬우니 꼭 다시 놀러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정말 용기 있고 행복한 선택을 하셨다고 절대 잘못하신 거 없고 남은 여행도 재밌게 잘하고 가시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렇게 두 명의 아기 손님들이 탁하우스에서 잘 놀기도 그리고 아프기도 하고 갔다.
그런데 왜인지 기분 탓인가...
갑자기 아기 손님을 동반한 가족팀의 문의가 많아지는 느낌이었다.원래도 화장실이 있는 가족룸이 있는 덕분에 가족 손님이 많긴 했지만 유난히 어린 자녀를 둔 부부들의 문의가 많아진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집이 워낙 가정집 같은 분위기여서 그 뒤에 놀러 온 많은 아기 손님들도 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지내고 갔다는 것이다. 바로 찾아볼 생각은 못했지만 너무 이상해서 새삼스레 네이버에 우리 집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온이 어머님의 블로그를 필두로 맘 카페에 우리 집 추천글이 올라와있었다. 아픈 아기를 같이 돌봐준 이야기가 세세히 적혀 있었다. 그냥 너무 당연히 본능적으로 한 일인데 좋게 봐주신 부모님들께도 감사하고 큰 탈없이 회복해준 아기들에게도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젊은 대학생들의 핫플이었던.. 탁하우스는 점차 어린이집이 되어갔다........ 는 농담이고 그때그때 오시는 손님의 따라 변신이 가능한 우리 집이지만 그 뒤에 온 어린이 손님들과의 좋은 시간을 위해 색연필과 스케치북, 보드게임과 귀여운 인형들이 탁하우스 살림에 자연스레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