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네잎클로버에 깃든 진심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by 피렌체장탁

유럽여행이나 게스트하우스를 떠올리면 흔히 젊은 세대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내가 실제 6년 넘게 운영하면서 만난 손님들은 이전에 글들에 적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다양했다. 특히 60-70대의 자유여행객이 얼마나 많을지는 나름 여행 짬밥 좀 있다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들은 내가 바르셀로나의 민박집에 잠시 일할 때 만났던 노부부이다.

그분들은 40L짜리 배낭에 실리콘 물통과 등산화를 달랑달랑 매달고 두 손을 꼭 잡고 도착하셨었다. 첫눈에 봐도 여행 고수의 향기를 폴폴 풍기셨던 두 분은 이제 막 스페인 순례길(까미노)인 프랑스길을 한 달간 완주하고 바르셀로나로 오신 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 70대의 모습은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렇게 다정히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노부부를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생기고 알 수 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이것저것 물어보시던 두 분은 바르셀로나 근교의 검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유명한 몬세라트에 가고 싶어 하셨고 처음에는 정보를 설명해드리다가 덜컥 "저도 같이 갈게요!"라고 동행을 선언하고 말았다. 가는 길이 꽤나 복잡하기도 했고 다정하고 유쾌하신 두 분과 하루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게 정말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질러버린 것이다!


몬세라트에 가는 길에는 기차를 두어 번 갈아타야 되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 외국에서 일하셨던 경험 덕분에 영어를 할 수 있으셨고 그게 자유여행을 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하고 직장에 올인하던 딱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의 전형이셨으나 은퇴 후에는 어머님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고 두 분의 종교이신 가톨릭교의 성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전 세계 이곳저곳의 성지를 순례하시는 동안 두 분은 젊고 바빴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쉽지 않은 여행의 여정을 함께 하며 더 애틋해지셨다고 했다. 그러다 블로그도 시작하셨는데 그런 여행의 여정들을 기록하는 블로그에 재미를 붙여 은퇴 후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셨다고 했다.


두 분 덕에 찾아간 돌산 위의 도시 몬세라트에서 본 성당과 검은 성모 마리아상,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인 '에스콜라니아'가 부르는 '아베마리아' 등 환상적인 풍경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지만 두 분과 함께 하던 잔잔하고 다정한 시간과 이 한마디가 더 기억에 남는다.


"두 분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게요."

"우린 이제 둘이 같이 사진 안 찍어. 둘 중 한 명이 먼저 가면 이 사진 보면서 슬퍼서 안돼. 그냥 우리 마음에 담을 거야."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저도 꼭 두 분 같은 짝을 만나 이렇게 황혼을 맞이하고 싶네요! 정말 꼭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여행하셔야 돼요."라고 진심을 전했다.

아버님은 시종일관 어머님의 컨디션을 체크하거나 배려하셨고 어떤 일을 할 때도 "당신은 뭘 원해요?"라고 물어보셨다. 긴 여정에 지치셨던 어머님이 소화가 안된다고 방에 누우셨을 때도 우리 와이프는 내가 끓여주는 특제 감자수프를 먹으면 금방 낫는다며 주방을 빌려 손수 정성스레 수프를 끓이기도 하셨다.

불과 3일 남짓 함께 지내는 동안 어느새 내가 꿈꾸는 인생의 마지막 즈음은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두 분을 보내고 나서 그분들이 특별하신 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피렌체로 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나서 정말 많은 60대 이상 여행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부가 같이 오신 경우도 많았고 여고 동창들이 함께 오시거나 혹은 인생 처음 혼자 외국으로 여행 겸 한 달 살기를 하러 오신 어머님, 골프여행 대신 트레킹을 하러 오셨다는 아버님들.. 나의 편견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분들은 대학생이나 젊은 친구들보다 더 준비를 많이 하고 공부해오셔서 피렌체는 물론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 나라들을 제대로 둘러보고 계신 것 같았다.


젊은 친구들과도 아주 잘 어울리셔서 저녁에 간단한 술자리에 어머님, 아버님들이 함께 하면 더욱더 즐거운 자리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찐 인생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이야기들은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생생한 진심과 힘이 실려 있었다. 어느새 경청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회사 부장님 말씀을 졸면서 억지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날은 각자 앞다투어 자기의 고민을 상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가실 때는 어김없이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딸 같은 내가 혼자 몸으로 외국에서 고생한다고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셨다. 나는 나이가 많아 두 번은 올 수 없을 것 같으니 이번이 마지막이더라도 꼭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자고, 정말 잘 지내고 간다고 말씀해주시며 안아주시는 데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분은 고생한다고 5만 원짜리를 손에 꼭 쥐어주시거나 가지고 오신 모든 한국 음식을 털어서 주고 가시기도 했다. 어머님들이 밥이 정말 맛있었다고 칭찬해주시거나 자기만의 살림 비법이나 특별한 레시피를 전수해 주실 때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오셨던 아버님 두 분은 알프스 산맥을 하이킹하고 이탈리아에 잠시 들르셨다고 하셨다. 단 1박이었지만 두 분은 무척 젠틀하셨고 주방에서 와인을 한 잔 하시면서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해주시며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님 한 분이 일어나셔서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셨다.


"이거.. 내가 알프스 산맥에서 3시간 넘게 찾아서 겨우 찾은 네 잎 클로버거든?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 된 기원 알고 있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의 전쟁터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였는데 총알이 스쳐가서 목숨을 구했다고 해서 내가 꼭 알프스 산맥에서 찾은 네 잎 클로버를 딸한테 선물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여기 와서 장 사장을 보니까 이거 장 사장한테 꼭 선물하고 싶네. 지금 많이 힘들지? 그런데 정말 내가 보니 잘 될 거 같아 자네는. 이거 받고 꼭 더 잘되라고 주는 거니까 힘내!"


사실 힘들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내 얼굴과 표정에서 뭔가를 느끼셨던 걸까?

본인 딸한테 주려고 열심히 찾으셨던 네 잎 클로버는 결국 나에게 왔다. 그날의 감동이란... 문장력이 딸리는 나는 차마 적어내지 못하지만 그냥 내가 이런 순간들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큰 힘이 되었다. 심지어 집에 돌아가고 나서 주셨던 문자 한 통 까지도 아직도 내가 여기 남아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정말 그분들의 말씀처럼 두 번은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인연.


하지만 그 짧은 인연만으로도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깊은 울림을 주고 가신 어르신들. 내가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다면 결코 마주칠 수 없었을 그분들의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오늘도 배우고 내일을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게스트하우스 숙박객의 나이 제한을 두거나 하는 일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바보들!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한 끼에 5천만 원이라고들 하던데... 나는 매번 심지어 돈을 받으면서 그런 소중한 기회들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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