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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Jul 03. 2023

생일입니다!

HAPPY BIRTHDAY TO ME

 7월 3일 나의 생일.


 일평생 나의 생일은 나에게 가장 스페셜한 날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는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매 년 생일을 기념했다.


 고등학교 때 '선영아, 사랑해'라고 온 동네에 플래카드를 붙이는 센세이셔널한 광고가 유행했을 때에도 그게 부럽다는 내 한 마디에 나의 친구는 우리 여고 앞 정문에서부터 나의 교실 입구까지 '현화야 사랑해'라는 문구를 출력하여 붙여주기도 했었다.


 대학교 때는 생일날 종로에서 놀다가 그 당시 새롭게 개장한 청계천이 진짜 동네 계곡쯤 되는 줄 알고 수영을 하다가 경비 아저씨한테 혼쭐이 나기도 하였고 회사 다닐 무렵에는 웨이크 보드를 한참 타던 때라 가평 어느 빠지를 예약해서 생일파티를 하다가 그곳에 숙박하는 모든 손님들이(50명쯤 되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이탈리아에 와서는 생일에 가는 레스토랑마다 늘 모든 손님들이 다 같이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코로나 시국에는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없어서 이번에야말로 생일파티는 없는 거라고 다짐을 하다가 '드라이브 스루 생파' 라며 내가 있는 곳에 잠시 들렀다 가는 생일파티라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가 역대급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바람에 역대급 제일 화려한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결론은 계획한 적은 없으나 늘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유난스럽고 시끄러운 생일을 보내던 나였다.


 그런데 딱 작년부터 이상하게 흥이 나지도 않고 조용히 보내고 싶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작년마저도 결국엔 생일파티의 끝에 클럽에 가긴 했지만...(한국 나이 38살에도 유럽에서는 20대인 척 완전가능!) 올해는 진짜 진짜 진심으로 조용히 나 자신을 돌보며 억지 신남이 아닌 생일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혹시 올해 너무 조용히 살아서 축하인사가 덜 올까 봐 슬며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생일임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놀고 싶진 않지만 놀고 싶었던 나는 일단 조용한 생일파티를 위해서 손님들의 양해를 미리 구했다.


'내일은 제 개인사정으로 저녁식사가 제공되지 않고 컵라면 및 쌀밥, 김치로 대체하겠습니다.'


 예약 시점부터 양해를 구한 터라 흔쾌히 나의 저녁 스케줄은 확보되었는데 막상 초대할 사람이 몇 명 안 되는 거다. 일단 나의 이태리 절친인 줄리아와 리사부부 그리고 Jo  정도인데 그들 사이가 어색해서 그나마도 쪼개서 파티를 해야 하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더 이상 사방팔방 의미 없는 사람 불러서 즐기는 생일파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은 어떻게 고민해 보아도 재밌거나 신나는 각이 안 나온 다는 것!


 이럴 거면 그냥 조용히 호텔이라도 하나 잡아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자 싶었는데 이탈리아 성수기 미친 물가는 우리 집 화장실 크기도 안 되는 호텔방도 최소 20만 원 이상이었다. (수영장 있는 호텔은 최소 50만 원!)


 이래저래 코 앞에 다가온 생일에 즐겁게 보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우울하던 차.. 생일 전야제라고 간 술집에서는 같이 간 친구가 이미 하루종일 술을 마시고 온 터라 앞에 사람은 있지만 혼술을 하는 꼴이었다.

 친구는 잘못이 없다. 내 생일파티 약속은 내일이었고 오늘은 그냥 한국 타임의 내 생일인 전야제였으니까. 그렇지만  술을 한 병 더 시킬 때마다 '미안해 미안해 많이 피곤해?' 라며 눈치를 보면서 마시고 결국 계산까지 다 해야 하는 내 신세가 서글프긴 하더라.


 '아 나 맨날 모든 글의 끝에 그래도 행복하다고 적었는데 사실 겁나 외롭고 쓸쓸한 삶 아닌가, '

 

 물론 지나고 나면 감사한 일 투성이겠지만 생일전야제 밤의 나의 생생한 심정을 남겨보고자 브런치를 켰다. 쓰려던 다른 주제들은 이어나가지도 못하면서 투덜대고 싶어서...


 어떤 감정은 현장감과 생동감이 중요하다!

나의 생일을 맞이하는 밤이 그렇다. 이 글을 씀으로써 또다시 유난스러운 생일맞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 생일 후일담을 올리겠지만 오늘의 나는 이렇다. 쿨한 척 하지만 사실은 생일 축하 많이 받고 싶은 39살의 넋두리 정도로 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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