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별로인데?
대학교 2학년이 되고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3월이었다.
동기 남자애들이야 부모만 다를 뿐이지 피 대신 알코올이 함께 흐르는 형제와 다름없는 사이로 동고동락 중이었고 이대로 내 생애 캠퍼스 커플(C.C)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봄바람이 불어오고 3월의 캠퍼스는 드디어 선배가 된다는 기대와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궁금함과 설렘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또 얼빠라면 어디 가서 지지 않던 나였기에 그 신입생에 대한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귀가 쫑긋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상심과 무관심한 척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 뭐 잘생겨봤자겠지."라고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미 속으로는 궁금해 죽을 것 같던 나는 어딜 가면 그 후배를 마주칠 수 있을까 은근슬쩍 뒤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인스타는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겹치는 수업도 동아리도 없는 것 같아 낙담하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그를 보게 된 것이다!!!!
5월의 축제 때였다. 우리 과에서 진행하는 행사 중 칵테일 Bar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서버를 담당한다는 소문이었다. 가야지.. 아무렴 꼭 가야지... 애써 흥분을 감추며 덤덤한 척했지만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몇 번이고 립스틱을 고쳐 바르고서야 Bar로 향했다.
이 녀석이 어디에 있을까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곳에는 잘생김의 '잘' 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동기 놈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 카운터 뒤 공간에서 해맑게 웃으며 보우타이를 매고 유니폼을 입은 그가 걸어 나왔다.
'아오 씨 뭐가 저렇게 얼굴이 맑아. 사람 얼굴이 저리 선하고 말갛고 그래도 되는 거야? 잘생기긴 참 잘생겼네. 근데 키가 좀 작네. 근데 뭐 어때 잘생겼는데.'라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입으로는
라고 앞담화 아닌 앞담화 및 센 척을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내 목소리가 좀 많이 컸나 보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은 곱지 않았다만 그 강렬한 눈빛(째려봄)이 싫진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용까진 듣지 못했고 저 선배아지매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나 싶어서 쳐다봤다고 한다. 그는 유난하고 시끄러운 인간들이랑 엮이기 싫었던지 멀찍이 다른 테이블 쪽으로 가서 서 있었다.
말 한마디 시켜보고 싶긴 했지만 이미 관심 없는 척 허세를 떨고 난 뒤였고 내 무례한 말을 그가 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친한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음료와 술도 다 주문한 상태였고 도무지 구실도 없었다. 그저 홀짝홀짝 칵테일 마시며 선이 고운 그의 옆얼굴을 흘깃흘깃 훔쳐볼 뿐이었다. 술이 점점 취해가자 억하심정이었는지 진짜 그가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에잇. 그래 어차피 나랑 엮일 일 없는 사람이야. 기대보다 별로이기도 하고. 관심 끄자!'
아직 어렸던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들키기 싫었고 잘생겼다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에 취해서는 결국 한 마디도 못해보고 그 Bar를 나왔다. 아주 짧은 순간의 관심이었기 때문에 실망이 크진 않았다. 그냥 잘생긴 애랑 친해질 수 있었는데 아쉽네... 이런 마음 정도였다.
그렇게 끝나는 가 싶었는데....
축제의 꽃 포차에서 한참 놀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바로 그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한국영화 3대 등장 장면 중 하나라는 우산 밑으로 들어온 강동원의등장 장면보다 더 설레는 순간이었다. 내 옆 자리 빈 플라스틱 통의자에 걸터앉으며 싱긋 웃는 사람이 그란 것을 확인하자마자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XX학번 J입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심장아, 나대지 마라. 저 말랑콩떡같은 피부 세상에 무슨 일이며 목소리는 왜 또 이렇게 귀여운데!!!! 난 귀여운 남자는 취향이 아니란 말이야. 근데 이거 내 입꼬리 왜 이래. 표정관리해라 진짜'
"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저보다 후배인 거죠?"
정말 너라는 존재는 태어나서 처음 보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냉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예전부터 너에 대해 들어왔었고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고 아까 보고 나서 친해지고 싶었다는 말을 도대체 21살짜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나랑 같은 자리에 있던 내 (여자)동기와는 이미 좀 친분이 있어 보였다. 같은 댄스동아리였던 것이다. 둘이 나누는 대화의 틈에 내가 끼어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였다. 애써 공통점을 찾아보았으나 말이 계속 꼬였고 도저히 할 말이 없어져 침묵이 돌기 시작하자 그는 곧 다른 테이블로 떠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겨우 온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지!
이미 취기가 가득했고 가까이서 본 후배의 얼굴에 더 취해버린 나는 급기야 무리수를 던지고 말았다.
"오, 나랑 성이 같네. 우리 친척인 거 같은데? 친척누나가 밥 사줄까?"
그렇게 나는 본적까지 바꿔가면서 지금 생각해도 구린 저 멘트로 그의 번호를 따고 밥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