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시설을 운영하며 사람들이 생각보다 치매라는 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매환자나 보호자 모두 그렇다. 물론 환자가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치매환자는 결국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때문에 치매환자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에 있어서 의외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호자가 자신의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치매환자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병원에서 의사에게 분명히 진단을 받았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매로 인한 가족의 불행은 대부분 여기에서 시작된다. 다른 대부분의 병처럼 초기에 관리하면 작아질 수 있는 문제를 더 심각한 문제로 키우는 것이다.
치매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치매가 아니라고 완전히 부정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치매가 있었지만 지금은 치료되었다고 믿는 경우이다.
의사가 분명히 치매환자라고 진단을 내렸음에도 보호자들이 부정하는 경우 대부분은 그 진단을 전해 들은 경우이다. 즉, 직접 의사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다른 보호자(일반적으로 형제자매)로 부터 전해 들은 경우가 많다. 물론, 직접 들었어도 부정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듣긴 했는데 확실하진 않아요."
"무언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동생이 설명을 잘못하거나, 의사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혹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기 위해서 그때만 잠시 치매진단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아직은 멀쩡한 우리 엄마가, 아빠가 설마 그런 병에 걸렸을 리 없다는 생각이다. 초기 치매의 경우에는 생활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더 높다.
두 번째, 치매가 치료되었다고 믿는 경우이다. 생각보다 많은 보호자들이 치매가 이제 치료되었다고 믿는다. 주간보호시설을 다니고 투약을 한 이후 문제행동이 사라지면 이제 그 병은 치료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안타깝게도 치매는 치료되는 질병이 아니다. 혈관성 치매와 같은 일부 치매의 경우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치료되지 않는다. 단지 문제행동이 없어져 '치료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처음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한 이후 한 두 달쯤 되면 많은 보호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정말 좋아졌어요!"
여기서 좋아졌다는 말은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문제행동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활은 좋아진 것이 맞다. 하지만 질병이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설 이용을 중지하거나, 투약을 중단하면 문제는 다시 생긴다. 시설 이용을 중지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투약을 임의로 중단하는 것이다. 치매약이 독하다(의미를 알 수 없는)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듣고는 이제 좋아졌으니까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임의로 투약을 중단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투약은 현재 치매의 진전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이다.
그냥 관심을 더 가지고, 머리를 더 쓰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치매는 치료되지 않는다. 그런 활동을 하면 치매의 진전을 늦출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치매예방 프로로그램과 같은 비약물적 치료는 보조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진행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투약을 중단한다는 것은 치매의 진전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치매가 삶의 질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였을 때 투약을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스스로 고생길에 들어서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굉장히 성실하고 효심이 깊은 보호자가 잘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투약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면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경우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못된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보호자뿐만 아니라 치매환자 역시 굉장한 비극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 사회는 치매에 대해 아주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치매 진단을 받으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하지만 치매는 관리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이 그렇듯 치매 역시 관리하면 어느 정도는 일생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다만 평생을 무언가 관리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며 앞으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치매 진단받았다고 남은 인생 전부를 불행해하며 살 필요는 없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치매진단을 받고 바로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에 입소할 필요도 없다. 단지 현재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서 자신의 병을 관리하면 된다. 인생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치매를 진단받은 후에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인생을 사는 방법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없는 것처럼, 치매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에서 관리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아직 치매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는 지금, 치매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