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도 왠지 모르게 싱숭생숭하고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는데 다녀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에 사는 다른 분들도 고국을 다녀오면 각자 저마다의 후유증을 앓고 계셨으나, 그들의 공통분모는 그리움과 이방인으로써 삶으로의 복귀에 대한 것이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한국에서 아프신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르는 상황이 되다 보니, 멀리 타국에서 걱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의 현실은 보편적인 고국방문 후유증보다도 무게를 더했다.
후유증의 결과, 영국에 돌아와서 밥해먹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일상을 겨우 겨우 해낼 정도여서 집안은 정말 폭탄 맞은 공간과도 같이 엉망이었다. 나는 원래도 정리에는 재주가 없지만 남편과 아들이 그에 합세하니 금세 어마어마한 장관을 이뤄낼 수 있다.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과 뚜껑이 있는 것은 열어만 놓고 닫을 줄은 모르는 남편과 콤비를 이루는 아들이 함께 사니, 문명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생활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종종 받곤 했다.
하지만 어제 보일러 정기 점검일이어서 보일러 기사의 쾌적한 업무 환경을 위해 집안을 대충 보일러 기사의 동선에 맞춰 노출되는 곳만 우선 치웠다. 그렇게 가구와 집안의 몇몇 공간이 잡동사니로 가려졌던 얼굴을 다시 훤히 드러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그동안의 먹구름이 개이는 듯한 상쾌한 힐링 효과를 보았다.
요즘 영국 날씨는 섬나라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쨍했다가도 금세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를 반복하고 최근 일주일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영국도 일기예보가 잘 안 맞기는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하굣길에 비올 확률 10%여서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비가 마구 쏟아졌다.
일기예보에 대한 배신감과 예보를 믿은 나 자신을 자책하며 아이와 집으로 오는데, 집 앞 공원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그렇게 퍼붓던 비가 멈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가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때마침 아이와 나무를 지붕 삼아 비를 피해 잠시 쉬고 있었는데, 하늘은 우리에게 숨바꼭질하듯 수줍게 무지개를 보여주었다. 나와 아들은 그 순간을 온전히 함께 만끽했다.
5초 정도 잠시 머물러간 정말 찰나의 무지개였다. 지난번에도 한번 무지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내 드는 순간 금세 사라져서 무척 아쉬워했었다.
아름다운 장면이 살짝 지나간 하늘을 보며 나는 우리 인생의 빛나는 순간도 그렇게 짧게 왔다가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수 같은 비를 맞다가도 순간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다. 무지개가 있던 찰나의 그 순간을 잘 포착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 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지 못한 게 후회되고 아쉽듯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기보다 그 순간에 충실하며 감사히 여기며 지내다 보면 우리 삶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나에게 죽음이라는 주제는 이제 멀게만 느껴지는 주제가 아니라서 요즘에는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에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얼마 전 각자의 스토리가 있는 노인들이 모여사는 양로원에 전직 마술사가 새로 전입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BBC 영화 <Is Anybody There>를 보았는데, 그걸 보면서 나이 드신 분들은 인생을 어쩌면 하나의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짧지만 돌이켜보면 소중하고 놀라운 순간들이 챕터처럼 펼쳐지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우리 아버지가 나와 아이가 함께 보았던 그 찰나의 무지개를 보셨다면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무지개가 오랫동안 머물렀었다고 회상하셨으면 좋겠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사셨고 긍정적이신 분이니깐 아마 그렇게 생각하실 거다.
나는 이제부터 나도 모르게 놓칠 수 있는 찰나의 무지개를 잘 포착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소중히 담아두고 싶다. 그리고 우리 집의 정리정돈 상태도 찰나의 무지개가 아니라 무지개가 오랫동안 머무르는 공간처럼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