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두시 Nov 13. 2019

햇살 내리는 날

그날은 비가 계속 내리던 런던에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던 날이었다.

그때는 내 맘을 몰라주는 그 햇살이 무심하다고 한편으로는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하고, 인천공항에서 아빠가 계신 곳까지 향해 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에도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 티 없이 푸른 하늘에는 어디론가 향해 가는 양 떼들처럼 구름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영국과 한국에서 보는 하늘이 모두 한결같이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그제서야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아빠가 날 기다려 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니 나는 이미 너무 늦었고, 내 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음날에서야 아빠의 손을 잡아드렸지만 너무 차가웠다. 안아드렸지만 아빠의 몸에 온기는 없었다.

나는 너무 늦게 아빠를 안아드렸다.

지난 여름에 뵈었을 때 안아드리고 말도 많이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맞이하던 날 어두운 새벽에 시작했던 미사가 끝나갈 무렵,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서도 햇살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아빠의 모습이 뜨겁게 사라져 버렸을 때 조차도 이 모든 게 실감 나지 않았다.

2주 후 영국에 돌아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쏟아지는 눈물이 내가 망각하려고 했던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아빠가 예전보다 더 가깝게 그냥 내 곁에 머무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그날처럼 햇살이 내려오는 날이면 아빠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신다는 느낌이 든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아프면서 순수한 아이처럼 변해갔다. 엄마가 지쳐 짜증을 낼 때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으셨고, 식탁에 꽃이 있으면 꽃을 만지거나 꽃향기를 맡아보곤 하셨다. 말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말수는 점점 줄어 갔다. 힘들지만 묵묵히 운동도 하시고 본인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셨다.

나는 변해가는 아빠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빠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의 시간 동안 어리석게도 나는 아빠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이제서야 한다.

오늘도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앉아있는 거실에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찰나의 무지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