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들을 어린이 집에 보낸 때가 만 3살이 조금 안되었을 때였는데, 그 이듬해에 어린이집에서 TV로 만화 미니 특공대를 가끔 보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어린이집 알림장 노트에 아이의 일과를 메모하거나 사진을 붙여서 부모에게 아이의 생활을 알려주었는데, 아마도 선생님이 이런 일들을 처리해야 할 때 하원 전에 TV를 틀어주셨던 것 같다.
그렇다. 어린이집에서 TV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 나이 때 아이에게 미니 특공대는 조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미니 특공대는 7살(만 6살?) 어린이들, 즉 유치원 고참 형아부터 시청할 수 있는, 선과 악이 있고, 싸우는 장면도 두드러지게 있는 그런 만화 프로그램이 었기 때문이다. 워낙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하는 일이 많으시니깐 그러려니 하다가 한 번은 넌지시 TV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TV를 틀었는데 그 시간대에 EBS에서 마침 미니특공대가 했던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선생님이 선호하시는 시간대에 미니 특공대 프로그램이 걸려든 것이었네..'(그래.. 미니특공대가 잘못했네..)라고 생각하고 진상 엄마 소리를 듣기 전에 그냥 어물쩡 그렇게 넘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다른 엄마들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에 나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잘한 것이었는지 아닌지 초보 엄마인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후, 아이는 정의로운 주인공 변신로봇과 악당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구조에 필히 싸우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로 펼쳐지는 우리나라 남자아이들의 TV 프로그램의 계보를 점차 섭렵하게 되었다. 타요, 뽀로로, 로보카 폴리를 보던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터닝 메카드, 카봇, 미니 특공대와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는 반갑지 않은 월반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영국에서 보던 TV는 우리나라에 비해 참 순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주로 동물이나 상상 속 존재가 주인공인 TV 만화가 대부분이었다. 악당과 싸우기보다는 위기와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소소하고 귀여운 소동이 일어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국에 와서는 아이가 당분간 그런 격렬하게 적을 무찌르는 내용이 있는 편향된 시각의 TV와 조금 멀어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는 아이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 아들은 만 7살, 영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영국에 온 지 4년 차가 되어, 이제 영국 학교에서의 사회생활이 어떤 건지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부정적인 말이나 듣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나이의 아이의 입에서는 아직 안 나와도 되는 말들이었다.
아이는 아빠랑 럭비, 축구 같은 운동이나 싸우기 놀이 등 몸을 이용해서 노는 걸 즐기고, 남자아이의 그 부산한 에너지를 점점 더 표출하긴 했었지만, 집에서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이 없기에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았다. 친한 친구의 형이 쓰는 거친 말들을 우리 아이는 그 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생각 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내게 아이의 이런 변화는 어린이집에서 TV 월반을 했을 때의 경험과 서서히 교차되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우리는 또다시 부모나 아이 자신도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말이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때마다 누누이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뿐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런 새롭고 강렬한 단어들은 아마도 아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이에게 사줬던 어린이 시집이 생각이 났다.
아이가 서툴지만 혼자서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자,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통해 언어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아 시집을 구매했었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영국 서점에서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엮어진 어린이 시집에 나의 시선을 종종 빼앗기곤 했다. 또한, 한국의 동시는 모두 교과서에서만 숨어 있는지 한국의 서점에서 동시집을 구하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을 영국의 시집으로 달래기로 했다.
영국에는 어린이를 위한 시집이 테마별로도 출간되어있다. 자연이나 사계절과 관련된 시집,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과 배움에 관련된 시집이 그러하다. 나는 이중에 "how to" 시집인 후자를 선택했다.
아무튼, 아이의 말버릇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나의 계획은 아이에게 시를 외우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시집에서 읽고 싶은 시를 찾아 하나씩 외우면, 머릿속에 시의 잔향이 남아서 그런 쓸데없고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점차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대신, 아이가 시를 한편씩 외우면 보상으로 50P(한화로 1000원이 안 되는 가치) 정도 주거나, TV를 한편 더 본다든지 초콜릿을 하나 더 먹는다는 식의 아이의 간단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보상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들은 엄마의 야심이 조금 섞인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에 아이는 빨리 하루 만에 다 외워버리고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외우는 시간을 하루에 5분에서 10분 사이로만 하라고 제시했다. 아이가 숙제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일주일이 되든 그 이상이 되든 완전히 외울 때까지는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낭송할 때에는 기억이 안 나서 중간에 끊기면 안 되고, 아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술술술 흘러나올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마침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낀 2주간의 긴 방학을 보내고 있던지라, 아이는 시간적 여유 때문인지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일주일 동안 <Rules of Speaking>이라는 짧은 시 한 편을 외우게 되었다.
방학이라 그 친구를 당분간 만나지 않아서 때문인지 아니면, 시를 외운 효과 때문인지 아이는 이 기간 동안 듣기 거스르는 말을 예전만큼 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처음 시도이기 때문에 우리도 시를 암송하는 것에 대한 효과를 뚜렷이 알 수는 없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기뻐했다. 앞으로도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아이가 이 경험을 통해 언젠가는 스스로 시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시를 마음속에 품고 다닐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마음속 주머니 안에서 시를 꺼내 음미하며 위안을 얻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