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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ug 13. 2020

동물원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들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사촌들도 못 만나서 심심해하던 아들은 어느 날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외동아이라 혼자 노는 모습이 가끔 짠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반려동물이 있으면 아이가 느끼는 적적함이 덜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아이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의 요구에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인지 엄마가 되면서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에게도 의견을 구해보니, 반려견이 생기면 생각보다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가는 것처럼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에는 반려견을 데려가기도, 어디에 맡기기기에도 곤란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외동아이의  엄마 노릇도 버거워하는 내가 다른 생명을 집안에 들이기에는 그릇이 작아서 그렇다.

동생도 낳아주지 못했는데 반려동물 마저 허락해주지 않으니 아이에게 미안함이 더욱 커졌다. 그날 이후, 집에서 동물과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자주 가까이에서 동물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런던이 있는 영국 잉글랜드 지역은 지난 6월 15일부터 점차 봉쇄가 완화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령은 피카딜리서커스 같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런던의 도심지를 비롯해 동네의 골목마저 활기를 잃게 만들었다.

그동안 영국인들은 슈퍼와 약국만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백화점을 포함하여 서점 등 여러 에서 쇼핑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7월 4일부터는 호텔, 도서관, 성당,  커뮤니티센터, 놀이터, 레스토랑, 펍(PUB)까지 대부분의 곳들이 개방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술 마시는 호프집 같은 곳이지만, 무뚝뚝한 영국인들이 술기운에 말을 쏟아내게 하는 일상적이고 친밀한 공간인 을 오픈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의미했다. 그것은 봉쇄령이 완전 해제됐다는 의미와 코로나 2차 대유행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었다.   


6월 중순의 어느 날, 영국의 한인 커뮤니티 카페에서 누군가 동물원을 다녀왔다고 글을 올렸다. 그래서 우리도 동물원 예약을 알아보고 6월 말쯤 마침 재개장을 앞둔 영국의 작은 동물원을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 이후로 슈퍼나 동네 나들이만 하고 밖에 나가지 못했던 터라, 동물원에 가기 며칠 전부터 오랜만의 외출이 기대되고 무척 설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재개장 첫날이라 그런지 동물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으로 붐비는 한국의 동물원만 다녔는데, 이렇게 한가한 동물원을 오니 찬찬히 동물들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물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나가는 관람객을 볼 때는 긴장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그런 경우는 한두 번 밖에 없었다. 날씨도 쾌청했고 폭염이 있던 런던에 비해 2-3도가 낮은 에스 지역이라 공기도 시원했다. 또한 시골에 있는 동물원의 주변 풍광도 그림 같았다.



작은 동물원이라 크기가 작은 동물 위주였지만 원숭이, 낙타, 펭귄, 부엉이, 홍학, 비버, 미어캣, 래서 판다 등 다양한 종으로 구색은 갖춰져 아이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 아이와 돌아다니기에 지치지 않을 정도의 규모에 당나귀나 염소 같은 동물을 아이가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해주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들이 또 가고 싶어 할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했다.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지는 오랜만의 나들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내가 동네에서 혼자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쓰라렸다.

인간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령에 몇 달을 집에 갇혀 지내는 것도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너무 마음이 씁쓸했다. 평소라면 동물원에 가도 무신경했을 텐데, 내가 코로나로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는 경험을 하게 되니, 동물원의 동물들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남편에게 이제부터 동물원에 안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 동물원은 가끔 동물을 근처 농장에 풀어주기도 하고 동물을 잘 관리하는 곳이라고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물론 평소 반려동물을 끔찍이 아끼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면 영국의 동물 복지가 한국보다는 훨씬 나을 걸로 추측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을 애써 내려놓았다.


이제는 이동에 있어 좀 더 자유로워져서 영국인들은 미술관도 가고, 비행기를 타고 휴가도 간다. 우리 가족은 친구를 만나기가 아직까지도 조금 꺼려져서, 우리끼리만 지내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지치면 자동차로 근교 나들이를 나선다.  그나마 이런 일상이라도 되찾을 수 있게 된 거에 감사하고 있다.


며칠 전 가디언에 올라온 뉴스를 보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영국에서는 3월부터 7월까지 73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7만 3천 명도 아닌 73만 명이라니, 그 수가 또 코로나 현실의 잔인함과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특히 사회에 갓 들어간 젊은이들이나 은퇴를 앞둔 고령자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동안 가디언에서는 문화 예술기관 종사자가 몇백 명씩 직장을 잃게 된 소식을 매일같이 올렸었다. 한때 이 분야에 몸 담았던 사람의 한 명으로써 너무나 안타까웠었다. 특히 영국 국립극장, 로열 오페라하우스, 사우스뱅크센터 등 영국의 내로라하는 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영국이 11년 만에 다시 경기불황에 진입했고, 2분기 GDP가 20% 급감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대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 영국에서 사람들의 삶은 경제적, 정신적인 불안함에 놓여있다. 동물원에서 갇혀 사는 동물들에 동정심을 느끼고 씁쓸해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인간의 삶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는 코로나 시대가 아닌가 싶다.                      



 ⓒ새벽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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