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구석 DJ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두시 Nov 16. 2020

음악이 곧 삶이다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

가을은 묵직한 소리가 잘 어울린다. 영국의 가을은 구름이 덮인 날이 많아 하늘에는 부쩍 무게감이 실린다. 짧아지는 해의 길이만큼 마음의 채도도 낮아지기 쉽다. 지는 낙엽을 보면 마음이 괜히 경건해지고, 수다쟁이 같이 촐랑거리는 음악은 멀리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더블 베이스나 첼로 연주가 음악 감상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구쟁이같이 귀여운 얼굴을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에 파묻고, 자기 몸보다 무거워보이는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있었다.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 사무실에서 선보인 작은 콘서트 무대를 마치고, 이듬해인 2011년에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녀의 이름은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이다. 재즈 뮤지션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 신인상을 수상한 것은 그래미 역사상 그녀가 최초라고 했는데, 이후 그녀는 베스트 재즈 보컬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와 두 차례나 더 연을 맺는다. 스무 살에 버클리 음대에서 교수가 되고, 오바마의 노벨상 축하공연에 참여하고, 카네기홀에서 반짝이는 스니커즈에 캐주얼한 드레스를 입고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그녀는 다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더블 베이스, 베이스 기타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무거운 가방은 짐같이 느껴져서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더블 베이스라는 덩치 큰 악기로 기꺼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여전사 같아 보여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음 생에는 그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다. 음악이 새로운 시공간을 내 앞에 펼쳐놓을 때마다 나는 이음악을 창조한 이들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갑자기 나는 왜 에스페란자 스팔딩과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을까? 그건.. 요즘 들어 내가 싫은 날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현실의 자아와 환상의 자아가 자꾸만 부딪힌다. 갱년기가 오기 전에 되고 싶은 나를 그리느라 마음이 괜히 조급해진다. 이러다가 어쩌면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원래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일텐데, 그게 참 어렵다. 엄마 노릇도 어렵고, 아내 역할도 어렵고, 매일 새롭게 하루를 충실히 채워가는 것도 어렵다.

무거운 악기를 거뜬히 연주하는 에스페란자 스팔딩을 보며, 나는 그녀의 삶은 왠지 자유로울 것 같다는 추측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범죄율이 높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싱글맘인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자란 지역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계도하기 위해 무료 음악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그녀는 그 혜택을 받으며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어린 시절 소아 특발성 관절염이라는 신체적인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음악 공부도 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은 매달 생활비가 모자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근근이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버클리 음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는데도 비행기표를 지불할 돈이 없어서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그녀의 삶이 이미 충분히 무거웠기에 그녀에게 더블베이스의 무게 정도는 가벼운 축에 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뎠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더블베이스는 마치 그녀 자신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재즈 천재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어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이 느낀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음악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그녀처럼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내 인생의 파트너인 나 자신을 좀 더 자주 충만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노래 "Little Fly"처럼 세상속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나를 기대해본다.                  


ⓒ새벽두시

       

매거진의 이전글 Awkwafina, 아콰피나 깐따피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