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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Dec 09. 2020

겨울을 안아주는 새의 노래

비틀스의 <Blackbird>

한국에서 살  대부분 아파트에 살았다. 주로 5층 이상의 고층에서 살아서 땅과 자연의 공기를 가까이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체온을 피부로 느끼거나, 계절의 변화 정도만 창문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나의 코와 귀는 자연에 비교적 무감각한 시간을 살았었다.

영국에서는 작은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어서 땅과 나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다. 꽃피는 계절엔 꽃과 풀의 향기를 맡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를 통해 매일 자연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원에 들른 새들의 소리가 한결같이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프레임 조절이 가능한 새장을 우리 집 정원에 설치하고, 마트에서 새 먹이를 사서 새장 안에 물과 함께 놓아주곤 했다. 새장을 설치하고 며칠 후, 새가 하나둘씩 새장 철창 사이에 몸을 비집고 들어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창문을 사이로 가까이에서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때 찾아오는 새 종류가 꽤 다양했다. 참새(Sparrow), 찌르레기(Starling), 꼬까울새(Robin), 대륙검은지빠귀(Blackbird), 그리고 간혹 가다 박새(Great Tit)가 왔다. 그러다 지난여름에 정원에서 새 먹이를 탐하는 쥐를 발견한 이후 새 모이 주는 일을 중단했다. 그래서인지 예전만큼 새가 우리 집을 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복잡한 도로가 관통하는 런던의 우리 집에서 이렇게 다양한 새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131년 전 영국에서 새를 보호하는 단체인 RSPB(The 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가 설립되었는데, 그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00년대 말 영국에서는 여성용 모자에 장식용으로 새의 깃털을 사용해서 많은 새들이 희생되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탄생된 것이 RSPB이다. 에밀리 윌리암슨이라는 여성의 용기 있는 결단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귀족 및 동물학자가 가담하여 단체의 활동이 더욱 확장되었다. RSPB웹사이트에 가면 모르는 새들을 찾아볼 수 있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동네 공원에 가면 까마귀와 나무 안에서 재잘거리는 참새떼, 그리고 갈매기를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던 갈매기가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비둘기처럼 흔한 것 같다. 또 다른 도심 공원에서는 오리와 거위가 겁내지 않고 행인들에게 다가온다. 차를 타고 외곽으로 조금 더 나가면 독수리 비슷하게 생긴 붉은솔개(Redkite)와 딱따구리도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 한국에 새의 존 대해 무했었는데 영국에 공원과 같은 녹지대가 많아서인지 새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새에 관한 궁금증을 바로바로 풀어주는 남편 덕분이기도 하다. RSPB에 따르면 기후 변화 때문에 새들이 점점 더 북쪽으로 이동한다고했다. 그래서 영국에서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새들을 계속 발견할 것 같다.  


우리 집 정원의 방문객 중 내가 좋아하는 새는 꼬까울새(Robin)와 대륙검은지빠귀(Blackbird)이다. 영국에서 '로빈'이라 불리는 꼬까울새는 벌써 이름부터가 친근하다. '로빈'이 사람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여 입에 착 붙기도 하지만 실제 내 친구 중에 로빈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이름이 예쁜 이 새는 적당히 앙증맞은 크기에 귀여운 얼굴을 지녔다. 무엇보다도 화사한 오렌지빛 가슴을 지닌 깃털 색이 아름답다. 그래서 비슷비슷하게 생긴 새들 사이에서 꼬까울새는 단연 돋보인다. 그림으로 겨도 될 정도로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다.    

              

꼬까울새(Robin), 출처 RSPB


 까만색의 새들은 특징이 없기도 하고 대부분 크기가 크기 때문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까치는 그나마 괜찮지만 까마귀는 부리도 길고 우아하지 않고 투박스러워 보여서 싫다. 그리고 히치콕 영화 <새>에서 사람들을 공격하던 까마귀 떼의 기억 때문인지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륙검은지빠귀(Blackbird)는 예외이다.

 

대륙검은지빠귀(Blackbird), 출처 RSPB

대륙검은지빠귀(Blackbird)의 수놈은 온통 몸이 까만데 특이하게 부리만 노란색이다. 내가 이 새를 금방 식별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처럼 대륙검은지빠귀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새소리 때문이다. 이 새는 기분 좋은 휘파람 소리 같은 경쾌한 지저귐을 들려준다. 비틀스가 <Blackbird>라는 노래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이 새의 소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게 분명하다. 글을 쓰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틀스의 곡 중 하나인 <Blackbird>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았다. 몰랐는데 비틀스의 노래 속에 대륙검은지빠귀의 명랑하고 다정한 소리가 실려있었다.  새의 소리는 기교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부산하게 수다를 떨며 재잘거리는 지저귐이 아니다. 그래서 대륙검은지빠귀의 소리는 비틀스의 음악 속에서도 조화를 잘 이룬다. 혼자 정원을 통해 들려오는 새의 노래를 들으면 도처럼 출렁이던 마음이 잔잔해지곤 한다. 새소리 하나만으로도 공간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겨울 풍경의 적막감을 깨주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대륙검은지빠귀의 소리를 비틀스의 노래 <Blackbird>를 통해 한번 들어보시길 권한다. 새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날갯짓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속삭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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