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앱을 켜고, 폴더를 만들고, 파일 이름을 뭐로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새 정리보다 정리를 위한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결국 서랍에서 오래된 노트를 꺼냈다. 펜을 들었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생각이 정리되는 속도가 달랐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좋다고 배워왔다.
더 빠른 앱, 더 스마트한 도구, 더 효율적인 시스템. 기술은 매일 진화하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새로운 생산성 앱이 나오면 써보고, 더 좋은 방법론이 나오면 배운다. 더 좋은 도구를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도구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오래된 방법들이 여전히 강한 이유가 있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것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손으로 쓰는 것이 그렇다.
연구에 따르면 타이핑보다 손으로 쓸 때 기억에 더 잘 남는다고 한다. 타이핑은 빠르지만 그만큼 생각 없이 받아 적게 된다. 반면 손으로 쓸 때는 느리기 때문에 스스로 요약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생긴다. 그 과정이 이해를 깊게 만든다. 느린 것이 오히려 깊은 것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것을 배웠다. 최신 장비가 항상 최선이 아닐 때가 있다. 복잡한 시스템이 오히려 변수가 될 때가 있다. 단순하고 검증된 방법이 위기 상황에서 더 믿음직스러울 때가 있다. 전장에서 배터리가 없는 나침반이 스마트폰보다 나을 수 있다.
고전적인 방법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 살아남은 것들이다. 그 안에 이미 지혜가 녹아 있다.
인도에서 살 때 이것을 더 실감했다.
인도의 오래된 시장에서는 지금도 할머니가 대대로 내려온 방식으로 천을 짜고, 향신료를 배합하고, 음식을 만든다. 옆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앱으로 레시피를 검색하지 않는다. 몸에 새겨진 방법으로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어떤 현대식 레스토랑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한다.
오랫동안 검증된 것에는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깊이가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거부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술은 분명히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도 필요하다. 무조건 새것이 좋은 게 아니듯,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상황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는 판단력이다.
때로는 노트북을 닫고 펜을 드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때로는 복잡한 계획표보다 메모지 한 장이 더 명확할 수 있다. 때로는 긴 채팅 대화보다 전화 한 통이 더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고전적인 방법이 살아남은 건, 그것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늘 디지털로 하던 일을 하나 골라, 아날로그로 해보는 것이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 지도, 앱 대신 손글씨 메모, 채팅 대신 직접 찾아가는 것. 불편할 수 있다. 느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옳았던 것이다.
속도가 전부가 아니다. 방향이 맞고 깊이가 있다면, 느린 것이 결국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