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코피는 무서운 것이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하더니 빨간 것이 뚝 떨어지던 그 순간. 손등에 묻은 피를 보고 울음이 터지던 기억. 엄마가 달려와 고개를 젖히지 말라고, 휴지를 콧속에 넣어주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무서웠다. 내 몸에서 피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코피는 별것 아닌 것이 됐다.
출근 준비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무심코 코피가 나면 그냥 휴지 하나 뽑아 막고 계속 하던 일을 했다. 거울을 보며 별거 아니네, 하고 넘겼다. 언제부터인가 코피는 그냥 가끔 몸이 보내는 신호 정도였다. 무섭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코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랫동안.
그런데 며칠 전, 딸아이가 코피가 났다.
갑자기였다. 아이가 "아빠"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는데, 코 아래로 빨간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별것 아닌 걸 안다. 어른으로서 충분히 안다. 그런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리가 먼저 나왔다.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는 울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피 묻은 손을 내밀며 "아빠, 나 코에서 코피가 나서 그래"라고 무서워 하며 말했다.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별것 아니라고 말해야 했는데, 괜찮다고 다독여야 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목이 메었다.
무서워하는 아이의 눈빛이,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보였다. 코피가 무서워 울던 그 아이가 이제 내 딸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빠이기 때문에 더 무서웠고, 아빠이기 때문에 더 아팠다.
코피 하나에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줄 몰랐다.
"괜찮아. 아빠도 아기 때 많이 났어."
겨우 그 말을 했다. 아이 코에 휴지를 대주며,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이라고 했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아이의 작은 어깨가 조금씩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나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피가 멈추고 나서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이제 괜찮아." 그 한마디가 코피보다 더 빠르게 눈물을 부를 뻔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서운 것들이 줄어드는 과정인 줄 알았다.
코피도, 어두운 것도, 혼자 있는 것도. 하나씩 무뎌지고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알았다. 어른이 된다고 무서운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무서운 것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코피가 무섭지 않다. 대신 아이의 코피가 무섭다. 아이가 아픈 게, 아이가 우는 게, 아이가 무서워하는 게. 그것들이 나의 새로운 코피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오늘도 딸아이는 잘 자고 있다.
별것 아닌 코피 하나가, 내가 아버지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줬다. 그리고 오래전, 코피가 나서 울고 있는 나를 달려와 안아줬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엄마도 나처럼, 마음이 쿵 내려앉았겠구나.
부모가 된다는 건, 별것 아닌 것들이 다시 별것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