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지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닮아가는 것 같은 딸의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에 한 시간, 점심시간에 한 시간 그리고 퇴근해서 3~4시간 정도 해도와 시간을 보낸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온종일 해도와 함께 있는다. 감사하게도 다른 가정의 아빠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아이와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여보, 나 육아휴직을 해보면 어떨까?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와 쉽게 교감을 형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었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보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상대적으로 아이와 교감하는 시기가 엄마보다 늦다. 그리고 아빠의 교감하는 방식은 엄마와 그것과는 다르다.
작년에 우리는 인도에 있었다. 인도에 1년간 생활하면서 수많은 외국인 가족들을 만났다. 대부분 우리처럼 가족을 데리고 왔었지만 일부는 가족을 본국에 두고 혼자 와서 지냈다. 그중 나이지리아 친구와 각자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까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와 떨어져서 일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어릴 때면 좋을 것 같다. 아이가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그 나이지리아 친구의 육아경험을 듣고 난 후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 친구는 아이가 셋이다. 특히 첫째 자녀가 임신하고 태어났을 때 그는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했다.
자녀가 태어나고 2년간을 떨어져 있었고 그 역시 그때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가족에게 돌아가 아이를 만났을 때 그는 가족과 떨어져서 근무했던 것을 너무나 후회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태어나고 2년간 아빠라는 존재와 전혀 교감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를 인식하는데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지금 그 아이는 7살이 되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아빠와 교감하고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실제로 아이는 생후 24개월 또는 36개월까지 형성된 교감이 평생 간다고 한다. 그만큼 그 기간에 엄마와 특히 아빠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지금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있다. 아니,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지만 몇 가지 나 자신과 타협해야 하는 지점들이 생겼다. 첫째는 경력관리, 둘째는 경제력관리이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히나 경력관리 측면에서 육아휴직을 결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돈이야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쓰면 되는 것이고 앞으로 또 벌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에서 고맙게도 육아수당을 어느 정도 주기 때문에 그럭저럭 타협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경력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력은 한번 단절이 되면 다시 복귀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육아휴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시간은 더 걸릴 수 있다. 심지어 시간이 무한대로 수렴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순간 육아휴직이 종료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병행을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육아휴직 기간과 휴직이 종료되고 복귀할 때 나의 모습에 대한 부분 역시 미리 계획하는 것이 좋다.
가장 고맙게 여기는 부분은 바로 가족의 신뢰와 지지이다. 아내는 나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신뢰해 주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아이와 교감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충분해질수록 아이의 행동과 생각방식, 성격과 성향 등을 가슴으로 알아가게 된다. 이는 내가 앞으로 아이에게 삶의 방향과 철학, 비전 등을 부모로서 제시할 때 소중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싶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