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을 기다렸어요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주인이 걸어두고 간 자리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그래도 당신을 기다렸어요!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그러는 거예요.

"누가 우산을 잃어버렸나?

아이고 아니네.

망가져서 여기다 버리고 같구먼."



바람이 제법 많이 불고 있어요.

비도 세차게 내리고 있어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내가 바빠지는 날이랍니다.

나는 우산이니까요.


나는 지금,

저 빗줄기만큼이나 슬프게 울고 있어요.

우산인 내가 다른 날도 아니고

비가 내리는 날에 버려졌단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말이에요.

충격이 너무 크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만약에요.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깜빡 잊어버리고 버스에 우산을 놓고 내렸다면

그건 차라리 괜찮아요.

그건 실수니까 이렇게 마음이 찢어지진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지금 너무나 아픈 것은

비가 내리는 날에 버려진 것도 모자라

우리 주인이 사는 집 앞 1층 현관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이랍니다.


차라리 나를,

쓰레기 통에 제대로 버려주었다면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거예요.


내가 버림받은 우산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오다가다 볼 수 있게

현관문 앞에다 버리고 갈 건 또 뭐예요.


우산에게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단 말이에요.


내가 너무 속상한 건요.

헤어짐에도 예의가 필요한데

우리 주인이 나를 너무 배려하지 않은 것이

정말 너무 아파요.



조금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내가 버림받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나는 메이커 제품도 아니고 튼튼하지도 못한

그냥 비닐우산이더라고요.

내가 비싸고 튼튼한 우산이었다면

적어도 이렇게 버려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내 운명이 가볍게 쓰고 가볍게 버리는

비닐우산이라면 그건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래도 주인양반아!

아무리 그래도 잠깐이라도 맺은 인연인데

버리는 데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잖아요.

차라리 집 앞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다 버려주지

집 앞까지는 쓰고 와서 집 앞에다 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도 주인한테 미안한 게 없는 건 아니에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고 해도

내가 못 버티고 뒤집힌 거 미안해요.

잠시라도 비 맞게 만든 것도 미안해요.

그런데요. 내가 아무리 잘못한 게 있다 해도

내가 이렇게 부상을 당한 날에 버리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요?

마지막으로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버려줄 만큼의 애정도 없었던 건가요?



우리가 비록 짧은 만남이었다고 해도

비 오는 날의 우리의 데이트는

제법 좋았던 기억이란 말이에요.


주인의 손이 내 기둥을 잡을 때의

온기가 좋았어요.

나는 주인의 머리와 몸이 내 품 안에 쏙 들어오게

최대한 감싸 안아주곤 했답니다.


주인과 내가 밀착하고서 함께 듣던

빗소리는 또 얼마나 좋았다고요.

토도독 톡톡 가볍게 떨어지던 빗소리부터

주르륵주르륵 시원하게 쏟아지던 빗소리까지

우리 함께 듣던 빗소리의 추억을 잊은 건가요?

그 소중했던 우리들의 추억이

어떻게 강풍 한 번에 모두 사라지나요?


혹시 내가 바람에 훌러덩 뒤집어졌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몰라요.

나의 뒤집힘이 절대 나의 변심은 아닌데,

주인은 혹시 내 마음이 그렇게 뒤집어졌다고

오해를 했던 걸까요?

우산인 내가 바람에 힘없이 꺾여

우산대가 빠져버리는 부상을 당한 것에

주인이 너무 많이 실망을 했던 걸까요?


이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사이가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나의 부실함으로 인해,

잠시라도 주인을 비 맞게 했다는 미안함에

내 우산대가 망가져 흉해진 것도 잠시 잊었어요.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끌힐끔 쳐다봐서

그제야 조금씩 부끄럽더라고요.


주인은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었죠.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믿었답니다.

그렇게 들어가서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조금 늦게 나오나 보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지나가던 다른 인간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얌체같이 누가 우산을 공동현관에 버린 거야?"

"이렇게 버리면 누구더러 치우라는 거지?"


주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건

나를 버린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망가져버린 우산이 걸리적거린 그 마음은

좀 알 것 같기도 해요.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으로 집안에 한 번은

데리고 들어갔다가 버려주지 그랬어요.

이렇게 오가는 사람들이 다 보는 자리에

내가 버림받은 거 티 나는 이별은

좀 너무하지 않아요?

미운 주인, 나쁜 주인이에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고 있었는데,

마음 아파하던 하늘이

잠깐 동안 폭우를 뿌려주더라고요.

대신 울어주는 하늘 덕분에

이 씁쓸한 마음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답니다.


실컷 울고 나니까

속이 좀 후련해졌어요.



나는 활짝 펴진 내 몸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들의 소리를 참 좋아했어요.

내가 우산으로 처음 활동하던 날에

몇 방울의 빗방울이 또르르 흐르면서

나를 간지럽혀주던 그 순간의 느낌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기억이에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주인이 다시 나와주지 않는데도

그래도 나는 기다렸습니다.

주인이 나를 놓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요.


행여나 우리 주인 다시 나와 주려나.

비바람이 몰아쳐서

내 몸이 흐느적거리는 와중에도

이 자리에서 날아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꽉 주고서 말이지요.


나는 버려진 쓰레기가 아니라,

끝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당당한 우산이고 싶었어요.



(어느 비 오던 날에 망가진 우산 하나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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