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13
아빠는 스티커 붙이기를 좋아하신다.
처음으로 붙여 본 패브릭 스티커를
꽤 좋아하셨던 아빠를 위해
한번 더 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패브릭 스티커 같은 경우에는 경험을 해보니
아빠가 직접 떼어내긴 힘들었다.
그래서 아빠는 그냥 붙이기만 하실 수 있게
모양은 내가 미리 잘라갔다.
아빠와의 놀이는 그날의 컨디션이 좌우한다.
재료만 싸들고 갔다가 그대로 갖고 온 적도
몇 번이나 있다.
그날도 같이 놀기에는 힘들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내가 잘라간 패브릭 스티커 조각에
아빠의 풀려 있던 눈이 조금 살아났다.
그 덕분에 우리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놀이는 트리 꾸미기였다.
아빠가 어떤 모양을 더 좋아하실지 몰라서
하나는 트리 모양을 통으로 잘라서 갔고,
하나는 부분 부분으로 잘라서 갔다.
그렇지만 통으로 잘라서 간 트리는
붙이는 데 실패했다.
종이나 비닐이 아닌,
패브릭 천으로 만든 스티커다 보니
모양이 자꾸만 휘어지고 오그라들어서
쉽지 않았다.
내가 펴보려 해도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조각으로 잘라간 스티커가
붙이는 데 쉬웠냐면 그것도 아니다.
일단 트리 모양을 기억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내가 그냥 스티커를 순서대로 드렸다.
사진을 보여드린다고 해도 사진 속 트리와
패브릭 스티커의 모양이 똑같지 않기에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리를 멋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붙여서 완성해 보는 것이 목표였다.
3월까지만 해도 뭘 알려드리면
거의 반응이 없을 정도였다면
9월쯤부터는 반응이 좀 빨라지셨다.
4월부터 꾸준히 다니고 계신
주간보호센터에서의 색칠하기가
도움이 되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트리 모양으로 일단 스티커를 붙인 후에
점 스티커를 전구처럼 붙이고,
지팡이 모양으로 트리를 장식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지팡이를 마치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 붙이셨다.
덕분에 뭔가 개성이 있는 트리가 되었다.
불빛이 반짝이는 트리를 표현하고 싶어서
별모양 스티커를 드렸더니,
스티커 붙이기를 좋아하시는 아빠가
별을 정말 많이도 붙여놓으셔서 또 웃음이 났다.
아빠의 트리는 정말 반짝반짝 거리는 트리가 되었다.
두 번째 놀이는 연못 만들기였다.
내가 3월부터 아빠와 놀이를 할 때마다
점 스티커를 정말 많이 사용했었다.
이제 아빠는 손에 익숙해진 점 스티커를
그어진 선에 맞춰서 붙이는 것을 아주 잘하신다.
점 스티커를 아주 꼼꼼하게 붙이셨다.
아빠와 놀이를 여러 번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색칠하기와 스티커 붙이기 등을 하실 때
무지 꼼꼼하고 섬세하신 편이란 것이다.
연못의 테두리는 점 스티커로 붙였다.
패브릭 스티커를 동글동글하게 잘라간 것은
돌이 놓인 것이라고 정했다.
연못 안에 물고기들을 붙일 때였다.
나는 계속 스티커 뒤의 종이들을 떼어
아빠 앞에 놓아드리는 중이었다.
물고기 모양이 작아서 스티커 뒤의 종이가
잘 떼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집중해 있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에,
아빠는 물고기들을 모두 같은 방향으로만
줄 세우듯이 붙여놓으셨지 뭔가.
나는 그게 순간적으로 너무 웃겼다.
연못 둘레에 돌 모양도 붙이고
그 틈으로 자라난 풀들도 표현했다.
모양은 모두 내가 잘라간 것이지만,
아빠가 붙이기를 아주 열심히 하셨다.
풀 줄기 몇 개가 자라니까 연못이 훨씬 근사해졌다.
물 부분이 너무 썰렁한 것 같아서
"색칠 좀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빠의 섬세한 색칠하기 덕분에 연못이
훨씬 예뻐졌다.
분명 놀이의 처음 시작은 기운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는 모습이었다가
스티커를 붙이고 색칠하기를 하시는 동안
집중하기 모드로 바뀌신 아빠는
그 순간만큼은 눈빛이 살아있었다.
두 개의 작품을 완성하시고도
더 하실 수 있으실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는 원래 학습 쪽으로 집중력이 좋으셨다.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순간이
이런 놀이들을 하고 있을 때이다.
적어도 컨디션 좋은 날에 하는 놀이의 순간만큼은 집중력 최고다!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놀이들을
주로 하다 보니, 심지어 점점 솜씨가
좋아지시기까지 한다.
치매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정말 오래 기다려야 했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했고
인내심 테스트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빠가 관심 보일만한 놀이들을
계속 생각해 가면서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점점 나아진다.
치매 환자들에게 손을 사용하는 활동들이
뇌를 자극하여 도움이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아빠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생활은 좀 다르다.
놀이는 반복한 만큼 좋아지셨는데
씻기나 양치하기 같은 일상생활은
하실 생각이 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정말 유치원생 지도하듯
"손 씻으세요", "양치하세요"를 말씀드려야 한다.
그런 부분들이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임에도
그것을 스스로 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그날도 또 양치 안 하시겠다고
고집불통이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금방 내 말을 들어주셨다.
양치 마치고 자리에 눕자마자 어쩜 그렇게
순식간에 잠이 드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젊은 시절부터 눕기만 하면 잠드시는 것은
아빠의 복이다.
아빠의 침대 옆에는 액자가 하나 있다.
젊은 시절의 아빠 사진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아빠의 모습보다
사진 속의 아빠가 훨씬 더 젊게 보이는 건
나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보다.
아빠가 이렇게 젊은 시절도 있었구나!
그렇게 새삼스러운 생각과 함께
지금의 모습이 비교되어 마음이 울컥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이
사진 때문에 한 번에 확 와닿았다.
아빠의 속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동심이 가득한 상태인데,
아빠의 겉모습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낙엽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위태롭게 바뀌어버린 것이
현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아빠와 놀이를
하고 싶은가 보다.
아빠의 작품에서 만나는 아빠의 세상은
훨씬 더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하고 예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