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작은 손을 열심히 조몰락거리면서
연준이가 완성한 나는,
탱글탱글한 점토 사과였어요.
연준이는 장난꾸러기였죠.
나는 스마일 사과가 되고 싶었지만
입을 삐뚤삐뚤하게 만들어서
매일 불평만 하는 투덜이 사과처럼
만들어 놓았지 뭐예요.
"아... 안돼. 내 입이 굳어버리기 전에
빨리 입모양을 바꿔 달란 말이야.
이렇게 삐뚤삐뚤한 입은 싫다고!"
내가 아무리 소리치면 뭐 합니까.
연준이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고
결국 나는 심술 난 입을 가진 사과가
되어버린걸요.
이대로 굳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굳기 전에 온 힘을 다해서 입을 조금씩 움직였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울상을 짓는 얼굴로
굳어버렸지 뭐예요. 속상해요. 정말!
내가 스마일 사과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찌그러진 입을 갖게 된 건
연준이의 탓이 크다고요.
그래도 심술 난 표정보다는 울상 짓는 게
차라리 낫다며 나를 억지로 위로했답니다.
연준이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내 등에다가 시커먼 애를 붙이더라고요.
얼핏 스쳐 지나간 모양이라서 잘 보지도 못했어요.
"아... 이건 또 뭐야?
입도 마음에 안 들게 만들어주더니
등에다 붙인 이 딱딱한 거는 또 뭐냐고요.
이 단단한 느낌이 너무 싫어."라고
나는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죠.
이봐... 이봐...
처음 만들 때부터 삐뚤어진 입을 만들어주니까
내가 이렇게 불평 가득한 사과가 되어버렸잖아요.
나는 스마일 사과가 되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때였어요.
내 등 뒤에 강제로 붙여진 단단하고 까만 애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어요.
"예쁜 사과야. 안녕?
갑자기 단단한 게 붙어서 놀랐지?
나 때문에 등이 불편해져서 어쩌면 너는
나랑 짝꿍 되는 것이 싫을 수도 있겠다."
내 등 뒤에 붙은 이 아이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이 아이의 목소리가 진심임을
느낄 수는 있었어요.
투덜투덜 불평만 가득한 내게
'예쁜 사과'라고 말해주는 것을 듣고
나는 살짝 미안해졌어요.
"아니 뭐... 네가 싫은 건 아니고,
그냥 좀 놀란 것뿐이야.
갑작스럽게 짝꿍이 생겼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고맙다.
나는 지금 너한테 업혀 있는 것만 같아.
네 등이 되게 말랑말랑해서 기분이 좋아.
혹시 나 때문에 등이 아프진 않니?"
"좀 불편하긴 한데 단단한 네가 뒤에서
나를 지켜줄 것 같아서 안심되기도 해.
시간이 지나면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굳어서 단단해질 거야.
지금처럼 말랑말랑하진 않을 건데
그땐 너도 내 등이 불편해질지도 몰라.
근데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원형 자석이야.
아까 재료들 대기할 때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너랑 나랑 같이 짝꿍이 되어야
냉장고 자석이 될 수 있대.
너는 예쁜 모양 담당이고 나는 냉장고에서
안 떨어지게 딱 붙어 있는 힘을 담당할 거래."
"오... 그래?
냉장고에 매달려 있으려면 무서울 텐데
내가 나를 꽉 잡아줄 테니까 든든한데?"
"와... 사과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한테 되게 필요한 친구가 된 거 같아서 좋다.
나는 네가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하게 굳어도
괜찮을 거 같아.
왜냐면 내 몸이 이미 단단하기 때문에
네가 어떻게 변해도 상관없어."
"친구라는 말이 오늘따라 좋게 들리네.
반가워. 자석아!"
자석이가 처음 내 등에 닿고 붙여졌을 때는
되게 차갑고 단단해서 절대 친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매우 단단한 겉모습과는 달리
자석이는 긍정적이고 말도 예쁘게 하는 아이였어요.
이 아이와 짝꿍이라면 외롭지도 않고
냉장고 자석으로의 임무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 친구가 되었답니다.
연준이는 냉장고 자석이 된 우리를
냉장고에 붙여 놓지 않았어요.
서랍 속에다 넣어 두고는 그냥 잊어버린 것 같았죠.
햇빛도 못 보고 어두운 서랍 속에만 있으니까
나는 또 불평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내 짝꿍 자석이가 말해주곤 했어요.
"언젠가는 냉장고 자석으로 활동하게 될 거야.
그때까진 우리 둘이서 잘 놀고 있자."
만약에 나 혼자만 어두운 서랍 안에 있었다면
외롭고 무섭고 답답했을 거 같거든요.
그렇지만 내게는 잠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내 짝꿍 자석이가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했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연준이가 서랍 안에 있던 우리를 꺼내 들고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달려가더니
어떤 여자분한테 선물이라면서 내밀지 뭐예요.
"이모, 이거 선물이에요.
제가 만들었어요."
"와우... 너무 잘 만들었다!
근데 이걸 나한테 준다고? 고마워.
냉장고에 붙여두면 너무 예쁘겠는데?"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두자고 해도
꿈쩍도 않던 연준이가,
우릴 다른 사람에게 보낼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연준이네 집을 떠나서
다른 집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답니다.
만약 나 혼자만 가라고 했으면
두려움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나에겐 누구보다 든든한 내 짝꿍
자석이가 있어서 괜찮았어요.
새롭게 도착한 집에서는
우리가 유일한 냉장고 자석이었어요.
새 주인은 귀여운 냉장고 자석이 생겼다면서
집에 오자마자 우릴 냉장고에 붙였고요.
아, 냉장고에 붙는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동안은 계속 서랍 속에서 누워만 있다가
냉장고 위쪽에 높이 붙어 있으려니
나는 좀 무서웠는데요. 그때도 내 뒤에서
자석이가 꽉 잡아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점점 마음에 안정이 오더라고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가면서 익숙해져서
냉장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자석이는 처음 내게 약속했던 것처럼
나를 늘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했어요.
자석이 덕분에 안전한 냉장고 자석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창밖으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지나가든
자석이와 있는 한, 나는 정말 두려울 것이 없었죠.
그렇게 10년 이상의 세월을 우린 늘 한 몸이었어요.
그런데요.
얼마 전부터 내 짝꿍이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자꾸만 끙끙 앓는 소리를 내지 뭐예요.
"자석아!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나, 몸이 좀 이상해. 이때까지 한 번도
네가 무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네가 너무 무거워.
이러다 너를 떨어뜨릴 것만 같아."
"뭐라고? 내가 무겁다고?"
나는 자석이의 그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자석이는 10년 넘게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과라고 말해주는
짝꿍이었단 말이에요.
자석이는 늘 내 등 뒤에 가려 있으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아이라고요.
나랑 같이 있는 게 제일 좋다고,
나를 냉장고에 잘 붙여줄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단 하나뿐인 친구였단 말이에요.
그런 자석이가 내게 무겁다고 말하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자석아! 너 이제 나한테 싫증이 난 거야?
너는 늘 내 등 뒤에 붙어 있으니까
그게 지겨워진 거야?
그래서 내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 거야?"
"아니야. 내 마음은 변한 게 없는데,
너를 꽉 잡고 있던 내 힘이 다 사라진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
이러다 너를 정말로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될까 봐
나는 겁이 나."
자석이의 그 말들은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았어요.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자석의 말이 진심임을
내 짝꿍의 떨림을 통해 느낄 수 있었죠.
늘 내 뒤에서 나를 지지해 주던 자석 이를
이제는 내가 좀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자석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나는 뒤에서 나를 잡아주는 친구가 있어서
안심하고 즐겁게만 지내왔어요.
내가 기쁘면 자석이도 기쁠 거라고만 생각했었죠.
늘 뒤에만 있어서 한 번도 볼 수 없었어요.
내 친구 자석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어요.
"자석아, 내가 너무 무거우면
나를 붙잡아주느라 힘을 빼지 말고,
그냥 내 등에 가만히 업혀 있어도 돼.
이젠 내가 너를 위해 몸에 힘을 빡 주고 있을게.
너는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나에게 업혀서
좀 쉬고 있어."
"역시 우리 이쁜 사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너는 붙어 있을 수 있는 힘이 없는걸.
힘은 자석인 내가 내는 게 맞아."
자석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많이 힘들다는 것이 내 등 뒤에서 느껴지더라고요.
오전까지는 그렇게 끙끙대며 버티더니
오후가 되었을 때였어요.
늘 같이 붙어 있었던 한 몸이었던 우리!
자석이와 나 사이에서 뭔가 빠지직하는 듯한
찌릿함이 잠시 있더니, 이 고통은 도대체 뭔지
생각할 틈도 없이, 갑자기 우리는 바닥으로
추락을 하였답니다.
어?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채
분리되어 있었어요.
점토 사과인 나는 탱탱볼처럼 탄력이 있어서
어디 부서지거나 망가진 곳이 없이 멀쩡했고,
자식이도 워낙에 단단해서 어디 부서진 데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처음으로 떼어진 상태였어요.
"자석아! 너 괜찮아?"
" 사과야,, 너는 괜찮아?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자석이는 자기 때문이라면서 미안해하는데
나는 그 순간 웃음이 났어요.
처음 봤거든요. 내 친구의 얼굴을 말이에요.
"와, 내 짝꿍 자석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지금 보니까 나보다도 더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네.
오랫동안 나를 잡아주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 내 짝꿍!"
"뭐야... 갑자기 무슨 소릴.
너 하나도 안 무겁고 가벼웠어.
예전에 연준이가 나를 너의 등에다 붙일 때
슬쩍 얼굴 한번 보고 처음이네.
이렇게 너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치고 나서야
네 얼굴을 보게 되는구나.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다!"
우리끼리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주인이 와서 보더니 그러더라고요.
"어머, 냉장고 자석이 바닥에 떨어졌네?
아이고, 세월이 흐르니까 자석도 접착력이 약해져서
떨어지면서 분리가 되어버리는구먼.
그래도 어디 망가진 데는 없어서 다행이다.
근데 점토 사과는 어쩜 이리도 꼬질꼬질 해졌니.
처음엔 정말 귀엽고 예뻤었는데 말이야."
아, 그랬던 거였군요.
주인의 말을 통해 조금 더 알았어요.
내 짝꿍의 마음이 변했던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서 어쩔 수 없이 약해진 거였군요.
짝꿍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생기려고 하니
그렇게 힘겨워했던 것이었군요.
그럼, 그렇지! 우리 자석이가 나를 두고
변할 리가 없죠.
그래도 우리 주인의 그 말은 기분이 나빴어요.
날 보고 꼬질꼬질해졌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꼬질꼬질해지기 전에 먼지라도 좀
잘 닦아주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할 것이지 말이야.
당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자석이는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네요. 흥!"
냉장고 자석이었던 우리는 며칠 째
나는 점토 사과, 자석이는 그냥 자석인 채로
그렇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랍니다.
접착제를 붙여준다던 우리 주인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상태가 좋기도 해요.
10년도 넘게 고생한 우리 자석이가
이렇게라도 좀 푹 쉬게 해주고 싶거든요.
늘 내 뒤에서만 있었던 우리 자석이 얼굴을
이럴 때 마음 편하게 실컷 좀 보려고요.
당분간만 우리 주인이 계속 건망증인 상태로
우릴 좀 잊고 지내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처음 있는 휴가잖아요.
"자석아 있잖아."
"응? 뭔데?"
"네 얼굴을 보니까 너무 좋아.
그동안 내 뒤에서 나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너는 무지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어.
나는 우리의 추락이 사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인 거 같아.
덕분에 특별한 휴가가 생겼잖아.
우리 다시 냉장고 자석으로 돌아가면
그때도 잘 부탁해."
"그럼 당연하지. 우리는 짝꿍인걸.
오늘 네가 해준 말 절대 잊지 않을게. 고마워!"
나는 지금 행복한 점토 사과랍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어요.
바로 연준이요.
이 행복한 순간에도 나의 입은 웃질 못하잖아요.
이렇게 울상을 짓게 만든 그 개구쟁이 때문에
우리 자석이에게 나의 스마일 미소를
보여줄 수가 없잖아요.
으, 그것 하나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도 내 짝꿍 자석아!
너한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과지?라는
내 마음속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자석이는 나를 향해 미소 지어 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