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아빠랑 안 하던 것도 해보았다
새집으로 이사 가신 이후로
아빠는 혼자서 집밖으로 나가신 적은 없었다.
낯설어진 환경이 주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빠는 혼자서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하루는 엄마가 잠깐 방에 계신 사이에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신 일이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안 보이니까
방이며 화장실 문을 다 열고 찾다가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시고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지도 못하시고
엘리베이터와 현관문의 중간 지점에서
우두커니 서 계시더란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까지는 하셨는데,
그다음은 모든 것이 멈춤 상태가 되셨던가 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집을 몰라서
그냥 멍하게 서 계시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너무 이상했었다.
아빠는...
당신의 이름도 한참 생각하서야 하고,
아내와 자식들의 이름도 말씀 못하시고,
전화번호도 말씀 못하시고,
집주소도 말씀 못하시는 분이 되셨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혼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누가 경찰서에 데려다준다고 해도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다.
그런 상황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그래, 우리 아빠가 치매 환자시지라는
실감이 나곤 했다.
그래도 나는...
아빠가 하나 있는 딸의 얼굴도
아예 잊어버리셨던 때에 비하면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되셨기에
다행이라 생각하게 됐다.
우리 집에서 2주간 함께 지냈던 것이
아빠의 기억에 나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던가 보다.
그때 이후로 아빠는,
내 이름은 기억 못 하셔도
얼굴은 잊지 않으셨다.
이사를 하신 후에도 내가 가서
"아빠, 저 왔어요"라고 하면
아빠는 "왔냐"며 반가워해주셨다.
내 얼굴도 몰라보시던 충격도 받아봤었기에
얼굴만 알아봐 줘도 감사했다.
이사 가신 후에도 새집이 낯설으니까
아빠는 계속 엄마한테,
"우리 집(오랫동안 살던 집)에는
언제 가냐?"라고 묻곤 하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는
낯선 환경에도 많이 적응을 하셨다.
더 이상은 아빠도 우리 집에 언제 가냐는 말씀을
하지 않게 되셨다.
내가 방문했던 어느 날에,
"아빠, 지금은 이사해서 좋아요?"라고 여쭈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그날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빠랑 같이 놀다가 밤이 되어
자리에 눕혀드리면서 인사를 드렸다.
"아빠, 저 이제 가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뽀뽀, 뽀뽀" 그러시는 거다.
내가 아기였을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내게 남아 있는 기억 속에서는
단 한 번도 아빠와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그 정도로 다정했던 부녀 사이도 아니었었다.
그래서 너무 어색해 미치겠는데,
"뽀뽀"라고 하실 때의
천진난만한 아빠의 눈동자를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처음으로 아빠 이마에다
뽀뽀를 해드렸다. 그랬더니 아빠는
착한 아기처럼 눈을 꼭 감고 잠이 드셨다.
내가 여쭤보면
당신의 이름도 모르시면서,
내가 여쭤보면
딸인 내 이름도 모르시면서,
"뽀뽀"라는 말은 어떻게 떠올리셨을까.
그날은 정말로 아빠가 아기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너무나 멀쩡해 보이셔서
내 이름도 불러주시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욕심은 내려놓기로 한다.
같이 놀아드릴 때 집중하실 수 있고
내 얼굴이라도 잘 알아보시니
그게 어딘가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