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사랑한다

아빠 유치원 7

by 마이드림

그날 아빠랑 했던 놀이는 <같은 표정 찾기>였다.

내가 가져간 스티커를 하나씩만 붙여드리고

똑같은 모양을 찾으시라고 했다.

문제가 어렵지 않지만 아빠에게는 완전

어려운 문제로 보였다.

쉽게 찾지를 못하셨다.


만약 어린이에게 힌트를 준다면

"얼굴이 노란색이야", "눈이 동그랗네" 등

이런 말들이 힌트가 될 텐데,

그날의 아빠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색으로 힌트를 드려도 색과 색의 이름을

연결을 짓질 못해 아무 소용이 없었고,

눈이 동그랗다고 해도 동그란 눈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해서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똑같은 얼굴을 찾질 못하셨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범위를 좁혔다.

어차피 모양이 반복되는 스티커였기 때문에

한 줄씩 줄을 정해드렸다.

"아빠, 이 줄에서만 모양을 찾으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빠는 시야가 좁고 한정적이라 범위를 좁히니

처음보다는 잘하셨다.

아빠가 똑같은 얼굴을 찾으실 때까지

우리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드디어 똑같은 얼굴 찾기 성공!

(자세히 보면 실수한 것도 섞여 있음)

아빠가 같은 표정을 찾아내실 때마다

내기 빅수를 쳐드리면서

"와우, 그럼 한번 더!"를 외쳤더니,

아빠는 아기같이 까르르 웃으셨다.


예전에 건강하셨을 때는 웃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는데,

이젠 무표정인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아기같이 웃으시면

나는 그냥 그 모습이 좋았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그린 후에

색칠하기 복습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기는 순간순간 모양을 틀리셨지만

색칠하기는 그렇게 꼼꼼하실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가 색칠을 하시는 동안 조용히

감탄사 섞어서 응원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마주 앉았을 때 네모 그리기가

아예 안되시던 순간에 비하면 너무 잘하셨다.


너무 다행인 것이, 적어도 2025년의 나는

아빠께 잠시라도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놀이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놀이친구라고 해서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의 놀이를 좋아는 하셨지만

좀 어렵다 싶으면 그만하고 주무시려고 했다.

그럴 때면 아기 구슬리듯이 잘 구슬려야 했고

그것이 나의 몫이었다.



아빠와 같이 있을 때면,

나는 수시로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빠, 오늘은 아빠 이름이 생각나세요?"

그날따라 아빠가 대답을 하시는 거다.

나는 신이 나서, "그럼 엄마 이름은요?"

또 대답을 하셨다.

"아빠, 저 누구예요? 제 이름은요?"

엄마에 이어 내 이름까지는 막히지도 않고

술술 대답을 하셨다.


아빠 컨디션이 너무 좋은 상태였기에

동생들의 이름도 가능할 것 같았다.

큰동생의 이름에서 잠시 막혔다가

그래도 대답을 하셨다.

아, 이제 막내만 남았다 싶어 기대에 차서

아빠를 바라보았더니,

아빠는 막내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빠는 자식이 세 명 있어요.

000, 000, 그리고 또 한 명이 더 있어요.

저는 딸, 그리고 아들 두 명."

거기까지 듣고선 아빠가 나보고

"맏딸!" 그러시는 게 아닌가.

"맞아요. 맏딸. 제 밑에 동생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000" 그러셨다.

"맞아요. 맞아요! 그 밑에 동생이 또 한 명 있어요.

기억나셨어요?"


갑자기 아빠가 그러셨다.

"그 노마는 이름이 뭐고?(사투리 억양)"

그 순간 무슨 개그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낯설어서

자식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슬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져서인지

아빠의 반응에 웃음이 날때도 생겼다.

표정과 억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웃음을 주기도 하는 아빠다.


아빠가 나와 큰동생의 이름을

잘 대답하셨을 때는, 마치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잘해서 신난 꼬마가

어깨를 들썩들썩하는 모습 같았다.

그러다 막내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을 땐

약이 오른 모습이었다.


아빠의 속상한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쑥 튀어나온 말들이 "몰라요"밖에

없는 것보단 얼마나 다행인가.


그날은 같은 얼굴 모양 스티커를 찾는 것에

한참 집중을 하시더니, 순간적으로 확

컨디션이 좋아지신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오늘은 아빠 이름이 생각났으니까

종이에다 이름 좀 써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종이에다 아빠 이름을 쓰시더니,

한자로도 쓸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마치 신동 아들이라도 발견한

엄마 같은 심정이 되어 빨리 보여달라고 했다.


어머나!

아빠가 정말로 한글과 한자까지 이름을 쓰셨다.

당신의 이름도 가물가물 하시는 분이

어떻게 글씨까지 쓰셨는지 놀라웠다.


아빠가 이렇게 상태가 좋으실 때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내 이름도 써달라고 했다.


그전에 먼저 확인을 해보았다.

"아빠, 딸 이름이 뭐예요?"

"000"이라고 대답은 크게 하셔 놓고

막상 글씨로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셨고

또 그냥 멈춤 상태가 되셨다.


아빠 이름을 쓰셨으니까

내 이름도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까지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신기했던 것은

글씨를 쓰실 정도로 순간적으로 좋아지시니까

아빠의 감정이 드러났다.


아빠는 내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그 순간을 속상해하시는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왜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라며,

생각을 하고 싶지만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

그 순간을 많이 속상해하셨다.

평소 멍한 상태를 보는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아빠만 기억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까먹어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위로가 그것뿐이었다.

나는 위로를 잘하는 법을 모른다.


그날 아빠는 왜 내가 이런 것도 모르지?라는

표정으로 계속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내 이름을 떠올리고 종이에다 쓰셨다.

역시 아빠는 학습 쪽으로의 승부근성이 있으시다.

결국 생각해 내신 것이다.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아빠 글씨냐!

아빠 글씨를 보는데 뭉클했다.

아빠는 원래 글씨를 잘 쓰시던 분이었다.

기억이 왔다 갔다 하고 순식간에 백지상태가

되는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손의 감각이 살아나니

여전히 필체는 좋으셨다.



이쯤 되니 나는 욕심이 생겼다.

"아빠, '딸'이라고 써주세요."

그랬더니 아빠는 "몰라" 그러셨다.

내가 종이에다 딸이라고 적은 다음에

"아빠, 이 모양 따라 해보세요."라고 하니

아빠가 천천히 따라서 쓰셨다.

그림 보고 따라 그리기를 하셨던 때문인지

글자도 모양을 따라서 그리듯 쓰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있었다.

이 정도로까지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면

이럴 때 꼭 받아놓고 싶은 글자가 있었다.


무뚝뚝한 우리 가족들은 평소에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 말을 꼭 써놓고 싶었다.

아빠 글씨로 말이다.


"아빠, 사랑한다라고 써주세요.

사랑한다는 이렇게 쓰는 거예요."라며

내가 적어서 보여드렸다.

아빠는 내가 써놓은 것을 보고 따라서 쓰셨다.


각각 쓴 글자지만 모아 놓고 보니까

딸과 사랑한다가 합쳐져서

'딸 사랑한다'가 되었다.


그날은 생각지도 못하게

아빠랑 글씨 쓰기 공부도 한 셈이었다.

아주 중요한 문장을 완성한 날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를

귀한 말이기에,

종이에 기록하시도록 했으니 아주 큰 성과였다.


아빠의 짧은 러브레터(내가 시킨 거지만)를

보니까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부녀에게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그렇게 나를 감동시켜 놓고는 잠시 뒤에,

"아빠, 제 이름이 뭐예요?"라고 여쭈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잊어버리셨다.

또 눈만 끔벅끔벅하셨다.

바로 몇 분 전까지 기적처럼 한자도 쓰셨는데,

그 순간을 기억 못 하고 다시 원점이었다.

그래, 아빠는 치매 환자지!

너무 기뻐서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몇 달 전에 비하면 낫다.

두 번 다시는 못 들어볼 내 이름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퍼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젠 잊어버리긴 하시지만 가끔씩

다시 들어볼 수 있는 것이 어딘가 싶다.


아삐가 계속 약을 드시면서 좀 나아지신 덕분에

나는 평생 간직할 문장도 하나 생겼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아빠랑 같이 놀기를 정말 잘했다.

2025년에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적어도 아빠랑 놀이를 하는 동안은

아빠의 컨디션이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확 좋아지실 때가 있다.

바로 그날이 그랬다.


나에겐 이제 우리의 놀이,

아빠 유치원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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