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듣는 유치원생 같았던 아빠
부모님 댁에 방문했었던 그날,
아빠가 주무실 때 엄마와 잠깐 마트에 갔다.
아빠는 한번 잠드시면 깨지도 않고
오래 잘 주무시기 때문에
그 틈에 우린 장을 보러 간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우연히 쳐다본 소파 옆쪽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물이 있었다.
어? 그런데 물이 좀 이상했다.
쏟은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하나!
혹시 아빠가 우리 없는 사이에
소변을 못 가려서 실례를 한 것인가?
아빠는 이때까지 그런 적은 없으셨는데?
벽 쪽에 있는 화분에서부터
소파까지 물이 이어지고 있었다.
설마 아빠가 잠결에 화분에다 실례를 해서
그 물이 흘러나온 건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다가
아빠 옷이 멀쩡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거실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고 했더니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화분에서 흘러나온 물일 거라고.
한 달에 두 번만 물을 주면 되는 화분에다
아빠가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화분 밑으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물 자꾸 주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빠가 엄마 말은 듣지를 않으신단다.
정말 아빠를 말려야 할 것 같았다.
나무에 과하게 물을 준 때문인지
잎이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이 몇 개나 보였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나듯이
나무도 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요.
뿌리 썩어요.
아빠, 물은 이제 그만 주세요."
내 말은 좀 들어주시니까 일단 말씀드려 보았다.
그렇지만 내가 말씀드려도 소용없음을
잠시 후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잠깐 쉬다가 발을 움직였는데,
양말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분명히 의자에 앉을 때는 없었던 물이
바닥에 생긴 것이다.
이 물은 또 뭐지?
잠깐이었는데, 몇 분 동안에
아빠가 또 화분에다 물을 부은 것이었다.
난 처음에는 화분에서 흘러나온 물의 양이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아빠가 물을 붓는 양이 너무 많았다.
거실에 놓여 있는 화분이 두 개가 있는데,
그날따라 아빠는 화분 두 개를 번갈아가면서
계속 물을 들이부으신 것이었다.
그러니 물이 계속 바닥으로 흐를 수밖에
아빠는,
화분에다 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시니까 그렇게 물을 주고 또 주고
계속 흘러나오게 만드셨다.
화분에 대한 아빠의 애정이 너무 과한 데서 온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 이사하고는 새집이 낯설어서
아빠가 조용히 계셨는데,
어느새 좀 적응이 되신 거 같았다.
물건들을 하나씩 만지고 다니시는 걸 보면.
그날따라 자꾸만 바닥에 물이 새도록 하는
아빠를 보면서 걱정이 됐다.
이젠 아빠가 뭘 건드려 놓을지
알 수 없겠구나 싶었다.
계속 물 흐르고 닦고의 반복이 되니까
"아빠, 이제 화분에 물은 안 돼요"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빠 얼굴 가득 짜증이 묻어났다.
최근 몇 달 동안의 나는,
같이 놀아드리고
잘했다고 칭찬해 드리고
박수를 쳐드리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화분에 물은 이제 안된다고 하니까
아빠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으셨던 가 보다.
그날의 아빠는 말 안 듣는 유치원생 같았다.
하지 말라는 것만 되풀이해서 하시고,
자꾸만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주먹을 쥐고 내 팔을 꾹꾹 누르면서 치셨다.
기분이 좋지 않음을 평소보다 과하게 표현하셨다.
비교적 순한 치매였던 아빠가
그날부터 다른 모습으로 돌변해버리실까 봐
긴장되고 걱정되고 무서웠는데,
더 나쁜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 너무 다행이었다.
아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너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