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나는 매일 달립니다.
달리고 멈추고 달리고 멈추고
그렇게 이동을 하고 있어요.
좀 더 정확히는 구르면서 달리고 있죠.
나는 자동차 바퀴.
3번 버스의 이동을 책임지고 있어요.
따스한 햇살이 와닿는 날이면
달릴 때도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특히 싱그러운 아침 공기 마시며 달릴 때가
기분이 제일 좋아요.
아직 피곤이 많이 쌓이기 전이라 그런가 봐요.
얼핏 들으면 무지 쉬운 일 같지만,
나의 일은 생각보다 고충이 많아요.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달리는 것이
너무 힘들답니다.
불어난 물에 강제 입수당하듯 푹 잠겨서
숨 막히는 것도 참아내야 하고요.
그런 날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중심을 잡아가며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해요.
몇 날 며칠 폭염이 지속되는 날에도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길 위가 얼마나 뜨겁게 달구어지는지
닿을 때마다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 나오거든요.
내 몸만 해도 뜨거워 괴로운데,
받치고 있는 윗부분까지 평소보다 무거우면
정말 그 자리에서 펑하고 터질 것만 같은
날도 있답니다.
추운 날에는 얼어붙은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힘들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그냥 데구루루 굴러
다른 데로 가버릴 것 같거든요.
그러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엉뚱한 데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섬세한 이동을 해야만 하죠.
갑작스레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길 위에 갇히듯 멈춰 서야 할 때도 있답니다.
꼼짝도 못 하고 거북이걸음을 하다 보면요.
정말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아요.
그런 날일수록 조심하지 않으면
접촉사고가 줄줄이 일어나거든요.
내가 구르기 재주가 뛰어나도 그런 날에는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정체된 구간을 혼자서 무슨 수로 벗어나요.
아, 나의 최대 장점인 구르기 재주가
아무 소용이 없는 날이 또 있네요.
어디 사고라도 나서 길이 막힌 날은
한참을 도로 위에서 졸면서 서있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이면 평소보다 몇 배로 지치고
짜증이 올라오곤 한답니다.
몸이 가뿐한 날은 그래도 괜찮은데
내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이 제일 힘들어요.
너무너무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지고 있으면
이런 느낌인 걸까요?
승객들이 너무 많이 타서 위가 무거워지면
그 무게를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나는
정말로 괴롭습니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요.
나의 신음 소리가 가장 커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바로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이랍니다.
수두룩 빽빽 가득 물건을 채워 넣은 통처럼
버스 안에는 많은 승객들이 올라타거든요.
승객들이 많이 타는 날은 그 무게가 정말
장난이 아니랍니다.
한 명씩 더 올라탈 때마다 내가 떠받치고 있는
윗부분이 쿨렁하며 내려앉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뜨거웠다 차가웠다 하는 도로 위를
일 년 내내 달려야 하는 나도 힘들지만,
꾸역꾸역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사람들도
고되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 명씩 더 올라탈 때마다 내 입에선
"악, 무거워요. 그만 좀 타요." 소리가
비명처럼 흘러나온답니다.
적당히 따듯하고 바람도 솔솔 불고
그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래도 달리면서
기분 전환이 되는 날도 있었는데요.
요즘은 날이 더워지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타는 날이면,
그 밑에 눌려 있는 내가 더 힘이 드네요.
질식할 것만 같아요.
방금은 앞에 가던 버스가 배기가스까지
내게 뿜고 갔어요.
으... 시커먼 가스가 뿜어질 때 너무 기분이 나빠요.
매너도 없이 길 위에서 가스를 뿜어대고 말이야.
바로 뒤에 있던 나만 날벼락 맞았지 뭐예요.
그러고 보면 우리 바퀴들도 극한 직업인 것 같아요.
원래 달리기를 하면 좋은 운동이라는데,
우리 바퀴들은 달리면 달릴수록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명이 줄어들잖아요.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수명이 다해서
민폐 끼치면서 교체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방금 옆에 지나간 마을버스 5번의 바퀴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이에요.
차가 워낙 작다 보니 바퀴도 작아요.
태울 수 있는 손님의 수가 적어서인가?
5번 바퀴가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
항상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 보기 좋아요.
노선이 비슷해서 한 번씩 마주치면
항상 5번 바퀴가 먼저 인사를 건네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신나게 달리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승객들이 많아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힘내세요!"
나는 바퀴로서의 내 삶이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점점
짜증이 늘어나는 중이었어요.
5번 바퀴의 긍정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나를 반성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차도 작고 타는 손님도 적어서
덜 힘들어서 웃고 있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요.
작은 차에도 승객이 많이 타서
차가 쿨렁거리는 날이 있더라고요.
작은 바퀴로 버티기가 너무 무거운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였죠.
그런데도 5번 바퀴는 찡그리지도 않고 웃더라고요.
5번 바퀴가 "달려, 달려"를 구호처럼 외치며
힘을 내는 걸 보면서 나는 감탄했어요.
참 멋진 친구라니까요.
오늘 버스정류장에서 멈추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나를 계속 쳐다보는 거예요.
갑자기 핸드폰으로 나를 찰칵 찍기까지 했어요.
"아이 참, 부끄럽게 왜 나를 찍고 그래요?"
나는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진 찍힌 게 처음이었으니까요.
그 사람이 내게 그랬어요.
"오늘 보니까 네가 너무 대단해 보여.
이렇게 매일 위를 받쳐주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너무 무겁겠다. 수고가 많네."
방금 전까지 힘들다고 투덜대고 있었는데,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보니까
갑자기 늘 웃고 사는 마을버스 5번 바퀴가
생각나더라고요.
처음이었어요.
5번 바퀴 말고 나를 응원해 주는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말이에요.
바퀴의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막 뒤섞여서 떠오르던 순간이었어요.
나도 오늘부터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퀴가 되고 싶어 졌어요.
5번 바퀴처럼 말이에요.
앞으로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끼어 탈 때
짜증 내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단 몇 분이라도 일찍 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여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가 돕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려고요.
자, 오늘도 힘을 내서 쌩쌩 달려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