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손수건이 떠오를 거야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요.

나는 버스정류장에 놓여 있는 긴 의자랍니다.



오늘 나는 몸이 좀 안 좋았어요.

휘몰아치는 빗줄기에 계속 젖고 있었거든요.

처음에 살짝 젖을 때는 시원하고 좋았죠.

그러다 갑자기 빗줄기가 세지면서

완전히 내 몸이 흠뻑 적셔진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부턴 너무 춥더라고요.


나는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 좋아요.

높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좋아요.

솔솔 부는 바람이 내 몸에 닿는 날도 좋아요.

그런데 오늘은 계속 비만 내렸죠.

그것도 세게 말이에요.


온몸에 빗물을 뒤집어쓰고 나니까

이 꿉꿉한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비 좀 그치고 내 몸의 물기를 바싹 말려줄

해님이 나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째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하지 뭐예요.


뭔가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울적해졌어요.

그렇게 우울한 상태로 오후가 되었을 때였어요.



버스정류장으로 한 여학생이 들어왔어요.

"의자가 다 젖어 있어서 앉을 수가 없네."

그러면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서

나를 닦기 시작했어요.


물기를 닦은 다음에 나를 손으로 만져보더니

그래도 꿉꿉한 느낌이 남은 것 같다면서

가방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더라고요.

손수건을 펼쳐서 나의 몸 위에 놓더니

마치 방석처럼 깔고 앉는 거예요.


아,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손수건이 나를 감싼 적이 없었거든요.

손수건이 살포시 내 위에 놓이는 순간

너무 포근했어요.

비바람에 오들오들 떨던 내 몸이 그제야

온기를 되찾은 듯이 편안해졌어요.

손수건 위에는 여학생이 앉았어요.

훨씬 더 따뜻해졌답니다.


나는 버스정류장의 긴 의자!

버스를 기다리는 인간들이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내가 평소에 하는 일이지만요.

오늘처럼 비바람에 시달려 몸이 안 좋은 날에는

의자인 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었지요.

손수건이 덮이면서 이불 역할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 순간 생각했죠.

이 따뜻함이 너무 좋다.

비가 그칠 때까지, 아니 비가 그치고 나서도

손수건이 계속 나와 같이 있어주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말이에요.


이 정류장에서 일한 지 꽤 오래되었거든요.

그렇지만 손수건과의 만남은

그동안 없었던 일이라서 내게 좀 특별했어요.


손수건의 주인인 여학생은,

핸드폰에 머리가 들어갈 듯이 보고 있더니,

버스가 왔을 때는 재빨리 뛰어가서 타고 떠났답니다.



버스가 떠난 바로 그때,

낯 가리느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손수건이 외쳤어요.

"어... 어... 어... 나도 데려가야죠.

나를 여기다 두고 가면 어떡해요!"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있던 여학생은

자기가 깔고 앉았던 손수건을 그냥 두고

버스를 타고 가버린 거예요.

어머, 어쩌면 좋아요.

손수건의 당황한 모습에 내가 더 안타까웠죠.


부웅... 버스는 떠나버렸고,

손수건은 방금 벌어진 일이 믿어지지가 않는지

처음에는 멍하게 할 말을 잃고 있었어요.

조금 있다가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자마자

울음이 터지더라고요.


"엉엉...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

우리 주인이 나를 여기다 버리고 갔어.

나 이제 어떡해."


손수건이 우니까 마음이 짠해져서

뭐라도 한마디 해주어야 할 것 같았어요.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어요.


"저기... 있잖아. 손수건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좀 기다려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너네 주인이 너 잃어버린 거 알고

다시 찾으러 올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너무 울지 마.

비도 와서 꿉꿉한데 네가 울어서 젖으면

몸이 아플지도 몰라.

오늘은 너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해님도 없는 날이잖아."


"정말 우리 주인이 나를 다시 찾으러 올까?

나는 핸드폰도 아니고, 지갑도 아니고,

그냥 손수건일 뿐인데?

나는 비싼 물건도 아니라서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을까 봐 너무 무서워."


"주인이랑 친했어?"


"응. 나는 선물이었어.

우리 주인이랑 되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둘이서 같이 쇼핑하던 날에, 자기 손수건 사면서

우리 주인한테도 똑같은 걸로 사준 거야."


"손수건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친구랑 나눠가진 소중한 것이니까

다시 찾으러 올 거 같은데?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

무서워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같이 있어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의자야! 고맙다.

네 말을 들으니까 좀 안심이 된다.

아까는 우리 주인이랑 헤어진 것 때문에

너무 놀라고 슬퍼서 눈물밖에 안 났는데

네가 같이 있어주니까 이제 안 무서워."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내가 오늘 계속 빗물에 젖기만 해서

몸이 많이 안 좋았었거든.

근데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덮어준 덕분에

몸이 따듯해지더라.

힘들었던 날에 네가 나타나 준거

나는 정말 고맙고 좋았어."



나는...

손수건이 엉엉 울고 있을 땐 마음이 아파서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싶었고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걸 보니

내가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된 것 같아서 좋았어요.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전에 알던 친구처럼

마음이 끌리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주었답니다.

주인이 꼭 다시 찾으러 오면 좋겠다고 말이에요.

나는 버스정류장에 박혀 있는 의자니까

바람에 날아갈 일은 없겠지만,

손수건이 혹시 바람에 날아가기라도 할까 봐

내가 더 손수건을 꽉 붙잡고 있었어요.

다시 주인을 만나려면 이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니까요.


너무 다행인 건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끝없이 오가면서도 손수건을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방석처럼 펼쳐졌던 모양 고대로 보기만 할 뿐

손수건에게 쓸데없이 장난치지도 않았어요.

오늘은 버스정류장에 착한 인간들만 다녀가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한 시간쯤 흘렀을 때였어요.

여학생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와... 다행이다. 손수건이 그대로 있네.

다시 와보길 정말 잘했다.

소중한 친구가 선물해 준 건데

잃어버렸으면 너무 속상했을 거야."


그때 난 보았어요.

손수건이 얼마나 기뻐하는지를요.

오늘 봤던 표정 중에 제일 환하게 웃고 있었죠.


너무너무 다행이에요.

내가 열심히 손수건을 안심시키긴 했지만

솔직히 걱정됐었거든요.

귀중품도 아닌 손수건을 과연 찾으러 올 것인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나는 무작정 믿었어요. 꼭 올 거라고요!

손수건이 실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였죠.


한편으로는 손수건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어요.

주인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수건과 헤어지는 것은 싫었거든요.

계속 나랑 같이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소녀가 다시 돌아와서 기쁜 이유는요.

혹시라도 손수건이 나와 함께 있다가

바람에 날려가 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할까 봐

그런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손수건은 주인을 만나야만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이제야 안심이 돼요.

손수건의 주인이 친구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 좋아요.

손수건이 주인과 헤어졌다고 왜 그토록 슬퍼했는지

알 것 같았죠.



나는 마지막으로 손수건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된 거 축하해.

거봐. 기다려 보라고 했지?

오늘 너를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잘 가!"


"나도 정말 반가웠어, 의자야.

오늘 정말 무서웠고 막막했는데 네 덕분에

희망을 갖고 버틸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나는 너를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너도 가끔은 내 생각을 해줄래?"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잘 가."


손수건은 소녀의 가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버스를 타고 떠나갔어요.

주인의 가방 안에 들어갈 때의 손수건의 표정이

되게 편안해 보였어요.

그리고 행복해 보였어요.


손수건이 떠난 후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더니

그렇게 많이 내리던 비가 그쳤답니다.

비가 그치니까 잠시 내 옆에 다녀갔던 손수건이

정말 왔다 간 게 맞는지 헷갈렸어요.

내가 잠시 꿈을 꾼 것만 같았죠.


나는 손수건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손수건이 떠오를 테니까요.

우리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손수건이 내게 남기고 간 온기는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았답니다.


안녕, 손수건!

너를 만나서 좋았어.



정류장에손수건이있네.jpg

ㄴ 우연히 발견한 손수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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