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을 위한 특별 메뉴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아직도 그날을 기억합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열매가 24동 화단 옆에 있는

계단으로 떨어졌던 그날을 말이에요.


계단을 올라가던 그녀가 발견하고

나의 열매를 화단으로 옮겨준 덕분에

발에 밟히지 않고 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었죠.

"여기 대추나무가 있는 줄 몰랐네.

대추들아! 다음에는 빨갛게 익을 때까지

바닥에 떨어지지 말고 잘 커라. 알았지?"

그녀는 나를 보며 웃어주었어요.


맞아요. 나는 대추나무랍니다.

그녀는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날부터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녀를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답니다.

그녀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네곤 했지요.

"안녕? 오늘도 잘 지냈나요?

그날은 정말로 고마웠어요."라고 말이에요.


나는 그녀가 24동에 사는 것은 알겠는데

몇 층에 사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자주 쳐다봤는데요.

드디어 그 궁금증도 풀렸답니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러 나왔던 그녀를

내가 발견했거든요.


야호!

그녀가 너무 고층에 살고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그녀가 베란다로 나오기만 하면

내 시선에 보이는 층에 살아서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던

그녀도 나를 발견한 거예요.

"어? 대추나무가 여기서도 잘 보이네?

반가워, 나무야!"

그녀가 나를 보며 웃더라고요.


그날 이후부터는 그녀도

내가 있는 쪽 계단을 지나갈 때면

늘 나를 올려다보면서 인사를 건네주었어요.

"안녕? 오늘도 잘 지냈니?"


날씨가 더울 때는 너무 뜨겁지는 않은지

날씨가 추울 때는 너무 춥지는 않은지

늘 물어봐주었지요.


나의 열매가 커가는 시기에는

"와, 올해도 대추가 많이 열렸구나."라며

기뻐해주었답니다.


사실 그동안은 나를 발견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그녀가 좋았어요.



그런데요.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가 보이질 않았어요.

베란다에도 그녀가 보이질 않았고

화단 옆 계단으로 다니는 것도

볼 수가 없었어요.


무슨 일이지?

그녀가 보이질 않으니까 걱정이 됐어요.

다시 그녀가 내 눈에 보였을 때

그녀의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왜 이렇게 말랐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죠.


지금은 겨울이라 초록 잎 하나 없고

앙상한 나뭇가지뿐인 내가,

그녀를 웃게 해 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바람결에 소식이 들려왔어요.

오늘 밤에는 눈이 정말로 많이 내릴 거래요.


눈이 온다고 해서 그녀가 기뻐할까요?

내 앙상한 가지에 눈이 덮인 걸 본다고

그녀가 즐거울 일은 아니잖아요.

아, 나는 뭘 하면 좋을까요?



어느새 밤이 되었죠.

많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아, 눈송이가 내 몸에 닿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오늘 밤 눈이 아주아주 많이 내려준다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어요.


다행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펑펑 많이 내려주고 있어서 말이에요.


그런데 힘들었던 점도 있었어요.

가지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점점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거든요.

눈송이들이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나는 온몸에 힘을 빡... 주고 버텼답니다.


나의 오늘 밤 계획은요.

하얗고 예쁜 눈송이 트리가 될 거예요.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그녀가 나를 보며 배가 고파지면 좋겠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이유를 알게 되실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원하던 모습이

완성이 되어갔어요.

날씨가 도와주어 쉽게 녹아버리지도

않을 것 같아요.

드디어 눈송이 트리가 완성되었답니다.


이제 그녀가 나를 보는 일만 남았어요.

내가 그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제발 전달되게 해 주세요.

나는 온 마음을 담아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어요.

내 기도가 그녀에게 닿은 걸까요.

그녀가 베란다의 창문을 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귀를 쫑긋 세운 내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밤사이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구나.

앙상한 나무들이 눈꽃 덕분에 예뻐졌네.

눈송이로 만든 트리를 보는 것만 같아."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제발 내가 당신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느껴줘요."


오랜만에 그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나무야 안녕? 오랜만이지?"

드디어 그녀가 인사를 건네는데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나무야! 눈 오니까 너도 좋니?

눈이 많이 오니까 좋은 것이 있네.

자연이 만들어준 하얀 트리들이 가득해.

그리고 이건 좀 엉뚱한 생각인데 말이야.

다른 나무들과 달리 네 모습을 보면서

튀김이 생각나더라.

마치 눈송이를 뭉쳐서 튀겨놓은 것처럼

되게 먹음직스러워 보였지 뭐니.

바삭한 눈송이 튀김이라는 메뉴가 있다면

너무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을 했어."


오... 그녀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나 봐요.

정말로 그런 특별한 느낌을 주는

트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요?

조금만 더 내 마음을 느껴봐요.


"아, 말하다 보니까 배고파!

그동안 힘든 일이 있어서 입맛도 없었는데

너를 보는 순간 바삭하게 잘 튀겨낸

튀김이 먹고 싶어 지는걸.

내가 요즘에 살이 좀 많이 빠졌었는데

오랜만에 기름진 것이 먹고 싶어 지네."


아,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그녀가 나를 보고 배고파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거든요.


이제 안심이 되네요.

그녀가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으니

금방 기운을 차릴 수 있겠어요.



맞아요.

내가 당신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은

눈송이 튀김이 생각나는 트리였거든요.

부디 나를 보면서 튀김이 생각나서

배고파지기를 간절히 원했답니다.


그녀가 잘 챙겨 먹고 속이 든든해지면

우울함과 슬픔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 같았거든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그녀가 웃는 걸 보고 싶었어요.


오늘을 기억해 줄래요?

너무너무 힘든 일이 생겨서 입맛도 사라지는

그러한 순간이 또다시 온다고 해도

오늘의 나를 떠올려 주세요.


모든 근심을 새하얗게 덮어버릴 수 있는

그대만을 위한 특별메뉴,

눈송이 튀김을 말이에요.



눈송이튀김어때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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