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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개망초(開望草)라 부르겠다

희망을 열어다오

by 고스란


집 앞에 내 키까지 크려는지 1미터를 넘겨 쑥쑥 자라는 풀이 있다.


이름은 개망초.

이맘때 자주 보이는 계란처럼 생긴 작은 꽃을 피우는 풀이다.




아들이 중학생 시절 과학 식물 관찰을 수행평가로 내주셨을 때도 너무 흔해 노력이 안 든다며 콕 집어 제외로 두셨더랬다.

그때만 해도 도심지라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이 동네에선 조만간 제초작업을 하시겠구나 싶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작년 6월 어느 주말, 더위가 가실 무렵에 산책을 나섰다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앞에 나란히 가시면서 길가에 핀 꽃을 허리 숙여 보신다.

늘 가던 길이어서 다른 풍경은 낯설지 않아 지나쳤지만 두 분의 모습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얇은 여름 재킷에 밝은 색 중절모를 쓰셨고 할머니는 하늘빛 가는다란 주름진 긴치마에 크림색 모자를 쓰셨다.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아닌 것 같았다. 종종 두 분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시며 서로 미소를 지으셨다.

한참을 보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모습을 뒤에서 보니 너무 곱고 좋아 보이세요. 사진에 담아두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꽃배경으로 사진 찍어드려도 될까요?"

뭔 생각으로 오지랖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께서 허허 웃으시며 그럼 찍어주라며 폰을 내미신 후 할머니를 옆에 세우시고는 손을 잡으신다.

저렇게 나이 드는 부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을 받아 들고 두 분의 곱고 환한 모습을 두세 컷 찍어드렸다. 고맙다며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말씀하셔서 흐뭇했다


폰을 돌려드리는데 말씀을 건네신다.

"이 두 꽃의 이름을 알아요?"

무릎높이까지 자란 작은 계란꽃과 그 보다 낮은 곳에 조금 더 크고 흔치 않게 파란 꽃을 피우는 꽃에 대해 물으셨다


"이건 개망초.. 맞나요? 이건 모르겠어요."

"개망초 맞아요. 이건 수레국화예요. 독일의 국화이기도 하죠."

"근데 왜 개망초인 줄 알아요?"

"글쎄요."

"나라 잃었을 때부터 많이 피어서 그리 불렀어요."

"아, 그렇군요."

헤어진 후에도 두 분의 모습과 말씀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인지 개망초란 이름은 잊혀지지도 않고 꽃믈 보면 그 모습이 생각난다.

두 분이 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국제시장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수레국화가 독일의 국화인 것까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개망초에 대해 더 자세히 찾아보니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일본에 19세기말쯤 관엽식물로 들어가 우리나라까지 전해진 풀이다. 실제 방언으로 일본 왜 자를 쓰는 왜풀로 불린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조선말 일본인과 함께 들어온 결코 환영받지 못할 풀이었던 것이다.


5월 말부터 6월에 이렇게 곳곳마다 흔하게 피니 나라를 잃고 꽃을 보는 수년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다.

우리가 보기엔 그저 귀엽고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꽃일 뿐인데 그 시대엔 사람들의 원망을 많이 들었으리라.


지금은 일본에서 들어온 지 오래되어 귀화식물이 되었다. 꽃의 잘못은 없다. 북아메리카에서 살다 일본인에 의해 들어오면서 망할 '망'이 붙고 게다가 작고 수두룩해서 '개'자까지 덧붙여서 이름 불리니 어쩌면 우리나라에 사는 이 풀은 시대를 잘못 탄 비운의 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작고 어여뻐 눈이 계속 가고 어디에서나 서슴없이 자라는 이 풀을 개망초(開望草)라 부르기로 했다. 열 '개', 바랄 '망'자를 붙여 희망을 여는 풀이란 뜻이다.

따뜻한 봄 곳곳에 피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기쁨을 전하는 그런 꽃으로 살기 바란다.


너는 참 이쁘단다. 앞으로 환영받으며 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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