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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Dec 07. 2020

12월을 위한 영화 31편 01

12월 1일 - 4일: Isolation

12월을 위해 골라 놓은 31편의 영화들 중, 과연 첫 날을 열어줄 영화로 무엇을 고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유독 눈에 띄는 4편의 영화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고립(Isolation)'. 


1년 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거의 1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이토록 바꾸어 놓을 줄. 잠깐 그러다 말겠거니,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느새 일 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지금, 급격히 늘어난 확진자 수를 잡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타인과의 접촉을 자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유독 이 4편의 영화가 눈에 띄었나 보다.


[12월 1일] 투 나잇 스탠드 Two Night Stand, 2014


감독 맥스 니콜스 Max Nichols

각본 마크 해머 Mark Hammer

출연 애널리 팁튼 Analeigh Tipton, 마일스 텔러 Miles Teller


메건: 현재 직업은 백수, 바람핀 약혼자와 헤어져 상심한 상태, 집세 낼 돈도 없음. 

알렉: 평범한 은행원, DJ 여친과 동거 중, 여친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상태


두 사람은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우연히, 어쩌다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에 알렉의 침대에서 눈을 뜬 메건은,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집을 나서지만, 문을 연 순간 울린 경보장치 소리에 조용히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자는 척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잠에서 깬 그와 마주하게 된다. 이어진 그와의 짧은 대화는 메건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렇게 그의 집을 나선다. 그러나 아파트 출입구를 열려는 순간, 밤새 내린 눈폭풍으로 자신이 건물에 갇히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어쩔수없이 알렉과 함께 하루를 더 보내게 된다. 둘은 어색하지 않은 24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하고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 대화가 쉽게 풀리기는 만무하다. 그러다, 사건 발생! 메건이 사용하고 나온 후, 알렉의 화장실 변기에서 물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뚫어뻥은 친구집에 빌려줬고, 변기 물은 욕실 문을 넘어 계속 흘러나온다. 연말이라 옆집은 비어있고, 마땅히 뚫어뻥을 빌릴 곳도 없다. 결국 둘은 무모하지만, 다른 길을 모색한다.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어쩌다, 또는 홧김에, 또는 얼결에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내가 과연 무엇을 한 건가' 싶다. 그래서 그와 마주치는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은데, 그와 집 안에 갇혀 하루를 같이 보내야 한다. 밖에는 결코 나갈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어지는 대화들과 사건들. 마음이 떠난 여친에게서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와 좋아하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맞추며 살아온 여자. 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메건과 알렉은 서로를 알아간다. 내가 저런 상황에 빠지면 어떤 대화를 할게 될까,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생각하게 만든다. 메건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고 해결해 나갈지는 여전히 물음표이지만, 깜찍한 방법으로 메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알렉의 모습은 매우 귀여웠다.

영화 '위플래쉬'로 알려진 배우 '마일스 텔러'가 로맨스를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 전에는 몰랐는데, 이 영화를 보다보니 그가 '폴 뉴먼'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폴이 훠어어얼씬 잘생겼지만....훗.


[12월 2일] 미저리 Misery, 1990


감독 롭 라이너 Rob Reiner

각본 윌리엄 골드먼 William Goldman, 스티븐 킹 Stephen King(원작)

출연 캐시 베이츠 Kathy Bates, 제임스 칸 James Caan


베스트셀러 '미저리'의 작가 폴 셸던은 실버크릭의 한 호텔에서 작품을 탈고한 후, 차를 타고 눈 쌓인 길을 나선다. 운전 중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고, 눈길에 미끄러진 차는 절벽으로 구르기 시작한다. 뒤집어진 차 안에서 폴은 정신을 잃고, 그때 눈보라 속에서 누군가 나타나 그를 구해낸다. 사고 이틀 후, 폴은 "난 당신의 열렬한 팬이에요(I'm your number 1 fan)"라는 속삭임을 들으며 어느 집의 침대에서 눈을 뜬다. 그곳은 바로 폴을 눈보라 속에서 구해낸 앤의 집. 앤은 폴을 유명 작가로 만들어준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이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지극정성으로 폴을 간호하며 그에게 도움을 준다. 폴 또한 앤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며 감사함을 표한다. 그러나, 폴의 새로운 작품을 읽고 나서 보인 앤의 격한 감정과 눈 때문에 길이 막혀 병원에 갈 수 없고,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는 앤의 핑계는 그를 묘한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집착녀의 광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고, 누구도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줄 거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폴은 어떻게 앤의 집에서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릴러 영화다. 영화에 과하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스릴러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매우 지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스릴' 그 자체를 즐기게 된다. 결말을 알면서도 말이지. 무엇보다 애니 역할을 맡은 캐시 베이츠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마음 착하고 따뜻한 생명의 은인으로 행동할 때조차도 그녀의 얼굴엔 미친 집착녀의 광기가 묻어 있다. 그리고 그 광기를 드러낼 때면, 폴이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광기에 마침표를 찍어주길 바라게 된다. 캐시 베이츠는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연기를 다 보진 못했지만, 보더라도 그녀의 수상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2월 3일] 투 러버스 앤 베어 Two Lovers and a Bear, 2016


감독 킴 응우옌 Kim Nguyen

각본 킴 응우옌 Kim Nguyen

출연 데인 드한 Dane DeHaan, 타티아나 마슬라니 Tatiana Maslany

가끔 북극곰이 내려오기도 하는 북쪽의 작은 마을. 루시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을 떠나 남쪽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한다.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남자친구인 로만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같이 가자고 하지만, 그는 다시 남쪽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괴로워 한다. 괴로워하던 로만은 술을 잔뜩 마시다 결국 재활시설에 가게 되고, 루시는 그런 그를 만나려고 가지고 있던 돈을 써버린다. 이제 입학을 위해 떠나야 할 때. 둘은 전동 썰매에 짐을 싣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기로 한다.


루시와 로만은 과거의 괴로운 기억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다. 그 괴로운 기억이 로만을 북쪽으로 오게 만들었고, 루시를 남쪽으로 가게 만든다.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을 바꾸었고, 또 바꾸려고 하지만, 기억은 그들을 따라다닌다. 그런 와중에 루시와 함께 길을 떠나는 로만.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는 루시를 데려다 주러 가는 길이었지만, 나는 둘 다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길의 끝에 남쪽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둘은 그저 서로가 없이는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그저 함께이길 택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에는 곰이 한 마리 등장한다. 로만은 그 곰과 대화를 나눈다. 다른 사람 눈에도 곰이 보이는 걸 보면, 그 곰이 상상의 산물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 곰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곰이 왜 등장하는 것일까? 영화를 두 번 정도는 더 보아야 할 것 같다. 순전히 곰 때문에.


[12월 4일] 8명의 여인들 8 Femmes, 2002


감독 프랑수아 오종 Francois Ozon

각본 프랑수아 오종 Francois Ozon, 로베르 토마 Robert Thomas(원작)

출연 비르지니 르드와이앙 Virginie Ledoyen, 다니엘 다리외 Danielle Darrieux, 피르민 리샤르 Firmine Richard, 카트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uve, 엠마뉘엘 베아르 Emmanuelle Beart, 뤼디빈 사녜르 Ludivine Sagnier, 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 파니 아르당 Fanny Ardant

크리스마스 시즌, 사방에 눈이 쌓인 프랑스 시골의 저택. 대학생인 수종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집에 도착한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외할머니 마미, 하녀 샤넬, 엄마 개비, 하녀 루이즈, 이모 오귀스틴, 여동생 카트린느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7명의 여인이 등장한 후, 하녀 루이즈가 차와 빵을 들고 남주인의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비명 소리와 함께 창백한 얼굴로 방을 나온다. 개비의 남편이자 수종과 카트린느의 아버지인 마르셀이 등에 칼을 맞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7명의 여자들은 과연 누가 그를 살해한 것인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서로를 심문하고, 자신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르셀의 여동생 피에레트가 등장한다. 과연 이 8명의 여인들 중 마르셀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조지 큐커 감독의 1939년 작인 'The Women'을 리메이크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로 이를 포기하고, 대신 로베르 토마가 쓴 1958년도 연극을 선택해 미스터리 뮤지컬로 만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8명의 여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8명이 맡았으며, 그들 각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하나의 노래가 주어진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한 집안의 남자와 그 남자를 둘러싼 8명의 여인들이 벌이는 욕심, 부정, 동성애, 거짓이 드러난다. 그리고 8명 모두에게는 나름의 동기와 정황이 있어 보인다. 과연 누가 마르셀을 죽였을지 추측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이 귀한 여배우들의 연기를 한 영화에서 보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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