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 8일: Someone Like You
12월을 위한 31편의 영화 중에서 이번에 고른 4편의 영화는 사랑이야기이다. 사랑 때문에 아프고 슬프고 괴롭지만,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는 그가 있기에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들. Someone like you, 당신 같은 사람이 있기에 세상에 사랑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픈 이야기들. 여자 주인공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그, 그가 가진 따뜻한 포용력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이다.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그 따뜻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감독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각본 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I. A. L. 다이아몬드 I. A. L. Diamond
출연 잭 레먼 Jack Lemmon, 셜리 맥클레인 Shirley MacLaine
뉴욕 대형 보험회사 건물 19층. 수많은 책상들 가운데 하나. C. C. Baxter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아무에게도 주복 받지 못하는 이 남자. 그저 수많은 회계부서 직원들 중 하나이지만, 4명의 임원들에게 그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아파트가 임원들의 밀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 그래서 그는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원치 않는 초과근무를 하고, 집 앞에 도착해서도 자기 집 창문을 올려다보며 불이 꺼져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남겨놓은 밀회의 흔적을 정리하고, 그제야 티브이 앞에 앉아 즉석식품으로 저녁을 때운 후 느지막이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때로 그의 아파트의 영업시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임원이 그에게 잠시만 아파트를 빌리자고 전화를 한 것. 자다가 걸려온 전화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비워주고, 11월의 추운 밤을 밖에서 처량히 보내게 된다. 이런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승진 약속. 어느 날, 그는 임원들의 승진 약속에 따라 인사부서로 불려 간다. 부서장인 셀드레이크는 백스터의 아파트에 대한 소문을 알고는 그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은근한 협박을 가하며 아파트 이용권을 독점하게 된다. 셸드레이크는 이제 백스터의 아파트 단독 고객이 된 셈.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셸드레이크가 백스터의 아파트에 데리고 가는 여자가 바로 백스터가 짝사랑하는 엘리베이터 걸, 프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1월 1일부터 시작해서 12월 31일까지 두 달 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절정은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시작된다. 늘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프랜과 그런 그녀를 편견 없이, 재단하지 않고 대하는 백스터의 사랑. 이 영화가 진부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괴로움에 처한 프랜에게 보이는 백스터의 행동이 매우 담백하기 때문이다. 과한 친절로 상대에게 사랑의 감정을 유발하려 하지 않고, 과한 집착으로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대단한 선의 수호자나 영웅으로 비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가 어려움에 처한 프랜에게 하는 행동들이 더욱 진심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 담백함이 드러난다. 12월 31일에 한 번 더 보아도 좋을 영화.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셜리 맥클레인의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 토니 골드윈 Tony Goldwyn
각본 엘리자베스 챈들러 Elizabeth Chandler, 로라 지그먼 Laura Zigman(원작)
출연 애슐리 저드 Ashley Judd, 휴 잭맨 Hugh Jackman, 그렉 키니어 Greg Kinnear, 마리사 토메이 Marisa Tomei
뉴욕에 있는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는 제인은 워싱턴에서 온 새로운 총감독 레이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낀다. 둘은 수많은 대화를 이어가며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는 레이에게 3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레이에게 빠지고, 레이는 여자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고 제인에게 말하지만, 그 후부터 그는 제인과의 관계에서 서서히 발을 빼기 시작한다. 레이와 함께 살 아파트를 보러 다니며 들떠있던 제인은 결국 레이와 헤어지고, 기존에 살던 아파트가 먼저 나가는 바람에 갈 곳도 잃는다. 그때, 그녀는 바람둥이로 소문난 직장 동료 에디가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레이가 보는 앞에서 에디에게 룸메이트를 제안한다.
양다리로 여자를 실망시키는 남자, 그 남자에게 상처 받은 여자, 그리고 정착하지 못하고 모든 여자들 사이를 떠도는 상처 받은 남자. 이 세 명의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는 한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힘을 보게 된다. 사랑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과 사랑으로 그 상처를 감싸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는 진부한 것 같고, 세상에는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그런 사랑이 있기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해피 엔딩인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변할까 라는 물음으로 현실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그저 듬성듬성 눈이 쌓인 뉴욕의 거리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가 주는 행복만 만끽하시길. 그리고 또 하나! 젊은 휴 잭맨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그가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이기에 더 의미 있는 영화라는 것!
감독 노먼 주이슨 Norman Jewison
각본 존 패트릭 셰인리 John Patrick Shanley
출연 셰어 Cher,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뉴욕 브루클린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는 로레타는 7년 전 결혼했지만, 결혼 2년 만에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그녀는 그것을 '불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청혼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제대로 된 식도 올리지 않아서 빚어진 '불운'. 그녀와 5년 간 사귀어 오던 죠니는 이탈리아에 있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러 가기 하루 전,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한다. 5년 간 연을 끊고 지냈던 자신의 동생인 로니를 찾아가 그를 꼭 결혼식에 초대해 달라는 것. 로레타는 그의 부탁에 따라 로니가 운영하는 빵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과 외로움에 갇혀 지낸 로니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일어난 로레타는 정신을 차리고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지만, 로니는 그녀를 붙들고는 자신과 오늘 밤 오페라 '라 보엠'을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오페라와 로레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기에 두 가지를 한 번에 가진다면 더는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날 밤 둘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 '라 보엠'을 본다.
이 영화는 뉴욕의 겨울 하늘에 떠있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Dean Martin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When the moon hits your eye like a big pizza pie, that's amore.
당신의 눈에 달이 커다란 피자처럼 보인다면, 그건 당신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에요.
When the world seems to shine like you've had too much wine, that's amore
술에 취한 것처럼 세상이 온통 밝게 빛난다면 그건 당신이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에요.
사랑에 빠진 이에게만 보이는 밝고 둥근달. 문스트럭은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을 기다렸지만 사랑이 오지 않았기에, 이젠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택하려 했던 사람에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이제는 식어버린 사랑을 다시금 되살리는 사랑 이야기이다. 'Love' 보다는 'Like'에 안주하려던 로레타에게 찾아온 로니는 그녀에게서 사랑을 끌어내고, 로레타는 멈추었던 로니의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둘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로레타의 외삼촌 내외, 그리고 로레타의 부모님의 이야기 또한 마음을 살랑거리게 한다. 나에게는 살짝 의문이긴 하지만, 셰어에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샤론 맥과이어 Sharon Maguire
각본 헬렌 필딩 Helen Fielding, 앤드류 데이비스 Andrew Davies, 리처드 커티스 Richard Curtis
출연 르네 젤위거 Rene Zellweger, 콜린 퍼스 Colin Firth, 휴 그랜트 Hugh Grant
자기 관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녀, 브리짓. 철저한 자기 관리를 결심하며 새해를 맞지만, 그 결심은 며칠 만에 무너지고, 직장상사와의 뜨겁지만 짧았던 연애는 '퇴사'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가끔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되는 '마크 다아시'라는 남자는 만날 때마다 그녀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그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난 네 모습 그대로가 참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백스터'에 비하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마크 다아시'는 판타지 영화의 캐릭터 같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부자고, 능력도 있고, 사랑에 대한 아픔도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브리짓의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 현실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그런데 그런 점이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을 꾸면서 현실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현실과 살짝 동떨어진 영화도 우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소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브리짓에게 마크 다아시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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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 13일: Something Diffe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