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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Dec 25. 2020

12월을 위한 영화 31편 04

12월 14일 - 16일: Fantasy

어렸을 때 나에게 12월은 방학이 시작되는 달이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면 나는 곰이나 뱀처럼 동면에 들었다. 추위를 커버하지 못할 때 가장 불행하다 느끼는 나인만큼 겨울이 찾아오면 늘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의욕을 상실해서, 누가 강제로 끌고 나가지 않는 한 방구석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이때 나의 물리적인 삶의 반경은 방구석으로 제한되었지만, 제한된 것 이상의 세계가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이 영화들과 함께라면 그 세계는 더없이 퍼져나갔다.


[12월 14일]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1990


감독 팀 버튼 Tim Burton

각본 캐롤라인 톰슨 Caroline Thompson, 팀 버튼 Tim Burton

출연 죠니 뎁 Johnny Depp,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다이앤 위스트 Dianne Wiest, 앨런 아킨 Alan Arkin

화장품 외판원인 펙은 동네 여러 집들을 돌다 허탕을 치고는 높은 산 위에 홀로 서있는 저택에 올라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백한 얼굴에 가위로 된 손을 가진 에드워드를 만나게 되고, 그를 마을로 데리고 오게 된다. 독특한 외모에다가 사회성까지 부족한 에드워드는 온갖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마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이내 뛰어난 가위질 솜씨로 이웃들의 정원을 가꿔주고,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만들어 준다. 펙의 딸인 킴도 에드워드가 있는 집을 점차 익숙해한다. 그렇게 에드워드가 사회에 적응해 갈 즈음, 순진한 그를 꾀어 사건을 만드는 이들이 생긴다. 펙의 친구인 조이스는 에드워드에게 미용실을 차려준다는 명목으로 그를 꾀어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킴의 남자 친구는 부모님이 안 계신 사이 자신의 집을 털 계획을 세우고, 에드워드를 이 일에 억지로 가담시킨다. 에드워드의 순수한 마음이 사람들의 악한 마음과 오해로 인해 상처 받을수록 킴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영화는 늙은 킴이 손녀딸에게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회한에 젖어 풀어놓는 킴의 모습에서 에드워드와의 사랑이 더 깊게 묻어난다. 킴은 오랜 시간 동안 에드워드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마을에 온 이후,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에 매해 어김없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그를 떠올린다. 아마도 에드워드가 처음으로 만들어냈던 눈송이를 맞으면 춤을 추던 그때를 떠올렸을 수도.팀 버튼의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영화감독에게 음악감독처럼 중요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그에게는 죠니 뎁이라는 훌륭한 페르소나가 존재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 바로 그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대니 엘프먼이다.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앨런 실베스트리가 있듯, 데이미언 샤젤에게 저스틴 허위츠가 있듯 팀 버튼에겐 대니 엘프먼이 있다. 대니 엘프먼의 음악이 없었다면 팀 버튼이 영화를 통해 그려내고자 했던 세상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2월 15일] 초콜렛 천국 Willy Wonka and the Chocolate Factory, 1971


감독 멜 스튜어트 Mel Stuart

각본 로알드 달 Roald Dahl

출연 진 와일더 Gene Wilder, 피터 오스트럼 Peter Ostrum

어린 찰리는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그리고 4명의 조부모와 함께 아주 작은 집에 살고 있다. 4명의 조부모는 20년 간 침대에서 일어난 적이 없고, 그래서 엄마가 세탁일을 하고 찰리가 신문을 돌리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유명한 초콜렛 공장이 있는데, 이 공장의 주인인 윌리 웡카는 몇 해 전 공장에 스파이가 침입해 초콜렛 레시피를 훔쳐간 뒤 공장 문을 닫았다가 3년 후 다시 문을 열었고, 그 후로는 누구도 공장에 출입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 웡카는 5개의 골든 티켓을 발행하여, 티켓에 당첨된 사람에게 공장 견학을 시켜주고, 평생 먹을 초콜렛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후 전 세계에서는 웡카바에 들어 있는 골든 티켓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웡카바를 박스째 사기 시작한다. 초콜렛을 좋아하는 찰리 또한 간절히 골든 티켓을 원하지만, 그에게는 웡카바 하나 사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골든 티켓을 발견한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제일 처음 티켓을 발견한 사람은,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아우구스투스 글룹, 그리고 두 번째는 뭐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는 버릇없는 베루카 솔트, 세 번째는 며칠 째 껌을 씹고 있는 바이올렛 보르가드, 그리고 네 번째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 마이크 티비. 네 명의 어린이가 골든 티켓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마지막 티켓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티켓은 파라과이에 사는 어린이에게 돌아가게 되고, 찰리는 이 소식에 매우 실망한다. 길을 걷던 찰리는 길에서 동전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캔디샵에 들려 초콜렛을 하나 사 먹는다. 그리고 잔돈으로 할아버지에게 줄 웡카바를 하나 사 가지고 나오는데, 가게 앞에 있던 가판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파라과이에서 발견된 티켓이 위조된 것이었다는 얘길 하는 것을 듣고는 할아버지에게 주려고 샀던 웡 카바를 조심스레 열어본다. 그리고 진짜 골든 티켓을 발견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로알드 달이 쓴 어린이 소설이다. 아마도 이 작품보다는 팀 버튼이 만들었던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팀 버튼의 영화가 아닌 이 영화를 고른 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레트로 감성 때문이었다. 팀 버튼의 찰리는 이 영화의 찰리에 비하면 너무 고급지다. 초콜렛 하나 살 돈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신문을 돌려서 생계에 보탬을 해야 하는 찰리의 모습은 이 영화의 피터 오스 트럼처럼 보여야 더 마음을 쏟을 수 있다. 그래야 그가 골든 티켓에 당첨되었을 때 같이 기뻐해 줄 수 있고, 마침내 웡카의 초콜렛 공장에 들어섰을 때 그의 설렘과 기대를 공유할 수 있다. 공장의 내부만 보아도 팀 버튼의 영화와는 매우 대조적이지만, 기술적으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것이 오히려 영화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원작자인 로알드 달이 직접 각본을 썼지만, 정작 그는 이 영화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각본 기한을 맞추지 못하자 다른 사람을 시켜서 각본을 손 보았고, 그것이 그의 의도와는 맞지 않았다고. 그래도 영화 자체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개봉 이후 텔레비전에서 여러 번 방영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2월 16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 Stone, 2001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Chris Columbus

각본 스티브 클로브스 Steve Kloves

출연 다니엘 라드클리프 Daniel Radcliffe, 루퍼트 그린트 Rupert Grint, 엠마 왓슨 Emma Watson

모두가 자고 있는 고요한 동네. 세 명의 마법사가 편지와 함께 한 아기를 집 앞에 두고 간다. 아이의 이름은 '해리 포터'. 어린 해리는 이모 집 계단 아래 벽장에 살면서 갖은 구박을 당한다. 이모의 아들인 더들리의 생일, 해리는 이모의 가족들과 함께 동물원의 파충류 관에 갔다가 뱀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 과정 가운데 더들리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고, 벽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그러나 편지를 열어볼 새도 없이 더들리가 편지를 뺏어버리고, 편지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이모부 버논은 매일매일 끊임없이 도착하는 호그와트 편지를 막고자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결국 그의 가족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편지를 피해 외딴섬에 머무르고, 해리는 그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11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사람이 문을 무수고 들어와 해리를 찾는다. 루비우스 해그리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해리가 마법사임을 알려주고, 그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입학허가서를 전달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해리 포터'의 탄생. 처음 이 영화를 보았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겨울밤 혼자 피자 한 판을 먹으며 봤더랬다. 그러나 그 기억은 단순히 어떠한 사실에 대한 건조한 되새김이 아니라, 그 당시에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즐거움, 설렘, 놀라움에 대한 환기이다. 그 겨울밤 내가 있던 그 방 안을 마법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었던 해리 포터. 그래서 겨울밤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영화이다. 그리고 총 8편의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작품인 이 영화가 유독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감독인 크리스 콜럼버스가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족 영화 전문가의 손을 거쳤으니 그 느낌이 살아있을 수밖에. 물론 그가 만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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