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 Eponine Dec 25. 2020

12월을 위한 영화 31편 06

12월 19일: Special

[12월 19일] 밀회 Brief Encounter, 1945


감독 데이비드 린 David Lean

각본 노엘 카워드 Noel Coward

출연 실리아 존슨 Celia Johnson, 트레버 하워드 Trevor Howard

밀포드 역의 휴게실. 여주인과 역무원이 수다를 떨고 있는 화면 뒤로 두 남녀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알렉과 로라이다. 이내 휴게실에 들어오는 한 여자가 로라를 알아보고는 두 사람의 테이블에 합석한다. 로라의 지인인 돌리이다. 수다스러운 돌리의 급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두 사람의 시간은 방해를 받고, 기차의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알렉은 작별인사를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나 로라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후 휴게실을 나선다. 돌리가 카운터에서 초콜릿을 사는 동안 로라가 사라진다. 돌리가 로라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사이, 로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휴게실로 들어선다. 돌리는 로라의 상태를 걱정하고, 둘은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함께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리의 수다에 로라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집에 도착한 로라를 맞는 것은 남편과 두 아이다. 로라는 남편과 대화를 하다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울기 시작하고, 당황한 남편은 서재에서 함께 쉴 것을 제안한다. 서재에서 남편이 낱말 퀴즈 푸는 것을 도와주며 바느질을 하던 로라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혼잣말인지, 남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지 모를 독백을 시작한다.


영화는 로라의 독백으로 지난 몇 주 동안 로라와 알렉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준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주부인 로라가 밀포드 역의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 알렉과 어떤 관계가 되어가는지가 차분하게 전개된다. 우연한 첫 만남과 그 이후의 마주침,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그 가운데 마음을 뺏기는 순간, 감정의 고백과 함께 찾아오는 죄책감, 이어지는 거짓말과 현실의 괴로움. 그리고 갈등과 결심까지. 차분하게 로라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로라의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나로서는 로라의 마음을 깊이 들여야 본다고 해도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렴풋하게 그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인과가 명확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예전에는 이런 류의 영화를 보고 나면 큰 동요가 없었다. 그저 불륜 이야기라고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영화를 옮고 그름이라는 판단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불륜이란 것이 아름답게 그려진다고 해서 정말 아름다워질까? 불륜은 어떻게 해도 불륜이다. 불륜을 아름답게 그려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다 보니 더 다양한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영화만큼은 단독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그냥 하룻밤을 정해서 온전히 집중해서 보고 싶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매우 감성적인 작품이라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려면 조용한 겨울밤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사실, 웬만하면 하루 중 밤이 제일 긴 동지에 날짜를 맞추고 싶었지만, 크리스마스 등 다른 날짜도 고려하다 보니 19일이 되어버렸다. 이틀 차이 난다고 밤의 길이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뭐. 




Next

12월 20일 - 22일: Family

작가의 이전글 12월을 위한 영화 31편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