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 22일: Family
연말은 가족과 함께. 특히나 올해처럼 사적인 모임을 기피하는 때에는 더욱더 단출하게 가족과 지내는 연말이 많아질 듯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가족과도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들이 그 허전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감독 브렛 래트너 Brett Ratner
각본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David Diamond, 데이비드 와이즈먼 David Weissman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테아 레오니 Tea Leoni, 돈 치들 Don Cheadle
1987년, 잭과 케이트는 공항에서 작별을 앞두고 있다. 런던으로 은행 인턴쉽을 떠나는 잭과 그를 배웅하는 케이트. 그러나 케이트는 갑자기 잭의 출발을 만류하며 그냥 이곳에서 같이 삶을 시작하자고 한다. 케이트의 얘기에 잭은 인턴쉽 1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결국 비행기에 오른다. 그렇게 13년이 흐른 2000년, 잭은 뉴욕 최고급 아파트에 멋진 차를 가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까지 회의를 주재하며 미국 역사상 최대의 합병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금융계의 거물이 되어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잭은 회의 후 비서로부터 케이트에게 연락이 왔었다는 메모를 전달받는다. 오래전 헤어진 대학 때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서 온 연락. 잭은 케이트에게 연락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회사를 나선다. 아무도 없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의 뉴욕 거리. 잭은 눈에 띈 슈퍼마켓에 들어가 에그녹을 사려한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한 사람으로 인해 소동이 벌어지고, 잭은 그 소동을 정리한 후 그와 함께 슈퍼마켓을 나선다. 잭은 그와 묘한 의미의 말들을 주고받고 집으로 간다.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뜬 잭은 자신이 깨어난 곳이 어젯밤 잠든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판타지 영화이기도 하다. SF라고 해야 하나? 현재 이곳에서의 잭이,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1987년, 런던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케이트가 말한 대로 그곳에서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에 대한 답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답 안에는 최고급 아파트도, 멋진 차도, 금융계의 거물도 없다. 그저 소박한 주택과 두 아이, 아내, 그리고 장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타이어 매장 직원만 있을 뿐이다. 잭은 이 삶을 살면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가족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동안 나의 Favourite List에 있다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잭이 금융계의 거물이 된 걸 보면, 그에게는 그만한 재능이 있었던 것이고, 단지 가족을 희생했다고 해서 얻어진 운 같은 것이 아니었을 텐데 영화에서는 그의 성공과 가족과의 소박한 삶을 반대급부로 설정해놓고 있다. 물론 영화이기에 명확하고 극단적인 설정이 있어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기엔 이 설정에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정과 가족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꿈을 이루며 혼자 사는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텐데, 그런 걸 간과한 것 같아 아쉽다. 시대가 변하니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생각도 달라진다.
감독 머빈 르로이 Mervyn LeRoy
각본 앤드류 솔트 Andrew Solt, 사라 Y. 메이슨 Sarah Y. Mason, 빅터 히어먼 Victor Heerman
출연 준 앨리슨 June Allyson, 자넷 리 Janet Leigh, 마가렛 오브라이언 Margaret O'Brien,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피터 로포드 Peter Lawford
미국의 남북전쟁 시대, 마치가(家)의 네 자매인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엄마와 함께 가난을 견디며 살고 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 계시고, 어머니는 가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돕는 데에 열심이다. 첫째인 메그는 가정적이고, 둘째인 조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희곡을 써, 자매들과 함께 연극을 하기도 한다. 셋째 베스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막내 에이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이웃집 로렌스 씨 댁에 손자인 로리가 유럽에서 돌아와 살게 되고, 한 무도회에서 조는 그를 만나 친구가 된다. 로리의 가정교사인 존 브룩은 메그를 좋아하게 되고, 로리는 조에 대해 친구 이상의 감정을 키워간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인 '작은 아씨들'은 여러 번 스크린을 통해 재현되었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시얼샤 로넌이 조 역을 맡았던 그레타 거윅 감독의 2019년 작이 있다. 그 이전 만들어진 작품 중에서는 캐서린 헵번이 조 역을 맡았던 조지 큐커 감독의 1933년 작이 있고, 위노나 라이더가 조 역을 맡았던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1994년 작품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빈 르로이 감독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조를 연기한 준 앨리슨 때문이었다. '조'라는 역할은 지나치면 밉상이 되고, 확실하지 않으면 그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런데 조율하기 쉽지 않은 그 사이의 가장 적절한 정도를 준 앨리슨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있고, 그래서 언니의 선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을 보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쾌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 조.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제일 좋다. 베스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네 명의 소녀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스러운 삶의 이야기가 뿌듯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감독 존 터틀타웁 Jon Turteltaub
각본 다니엘 G. 설리번 Daniel G. Sullivan, 프레드릭 르보우 Fredric Lebow
출연 산드라 블록 Sandra Bullock, 빌 풀먼 Bill Pullman, 피터 갤러거 Peter Gallagher
루시는 시카고의 통근 열차 역에서 토큰 징수원으로 일하고 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몇 해 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명절 때만 되면 그녀가 가족 없이 혼자 지낸다는 이유로 추가 근무를 요청받곤 한다. 이렇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루시에게는 단 하나의 낙이 있다. 바로 아침마다 그 남자를 보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를 마주 보며 사랑을 고백하게 될 날을 꿈꾼다. 크리스마스, 그날도 루시는 추가 근무 요청을 받고 혼자 나와 토큰 창구에 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따뜻한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하며 토큰을 내고 간다. 다름 아닌 루시의 이상형. 그의 인사에 반갑게 대답해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던 순간, 플랫폼에 서 있던 그에게 시비를 걸던 건달들 때문에 그가 선로 위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다. 놀란 루시는 선로에 뛰어들어 그를 구하지만, 그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 병원까지 함께 간 루시는 그를 걱정하며 혼잣말로 "내가 결혼할 남자였는데.."라는 말을 중얼거리는데, 우연히 옆에서 이를 들은 간호사는 루시가 그의 약혼녀라고 착각을 하게 되고, 이를 그의 가족들에게도 얘기하게 된다. 그가 잠든 사이, 루시는 그렇게 그의 약혼녀가 되어 버린다.
영화는 어쩌다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의 약혼녀가 되어버린 루시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또 사랑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일 년 중 내가 가장 많이 보는 영화다. 적어도 분기 별로 한 번 이상은 보는 영화. 잭네 집안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과 루시를 향한 잭의 마음이 담긴 표정이 편안함과 설렘을 동시에 준다.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낸 루시에게는 가족들이 북적북적한 명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래서 루시는 혼수상태에 빠진 피터의 약혼녀 역할 보다도 그의 가족의 일원이라는 역할이 더 좋았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을 속여야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면서도 쉽게 솔직해질 수 없었던 이유이다. 여기에 피터의 동생인 잭이 등장한다. 루시가 형의 약혼녀임을 알기에 절제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그의 마음이 설렘을 자극한다. 특히 의식이 없는 형을 앞에 두고 카드 게임을 벌이면서 어떻게든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하고, 또 한편으론 정리하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 루시를 처음 보았을 때의 표정, 그리고 식장에 걸어 들어오는 루시를 바라보는 복잡 미묘한 표정 등 빌 풀먼의 연기가 매우 실감 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빌 풀먼의 외모 리즈 시절이 박제되어 있다는 것. 이 영화 전이든, 후든 어떤 영화를 보아도 이 영화에서 보다 더 잘생긴 빌 풀먼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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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 25일: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