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고등어 조림은 아니야
치앙마이 소고기는 질겨서 맛이 없다. 그리고 산간지방이라 해산물도 신선하지 않다. 한국에서 먹던 수많은 주꾸미들은 전부 태국산이었는데 정작 여기선 주꾸미 빨판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늘 돼지고기 아니면 닭고기만 주구장장 먹으며 지냈는데 하루는 철저한 K-입맛인 아이가 고등어 조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먹고 싶다 하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며칠 동안 몇몇 대형 슈퍼마켓을 뒤진 후에 겨우 우리나라 생물 고등어와 가장 비슷한 고등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게를 재어 가격표를 붙여 주는 곳에 가니 손질을 해주진 않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그냥 들고 가는 것이 원래 해주지 않는 것인가 싶어 소심한 마음에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통째 고등어를 들고 왔다.
집에 와 고등어 머리를 자르면서 처음 알았다. 내가 생선을 이렇게 통으로는 처음 손질해 본다는 사실을. 오징어는 내장을 제거하며 손질해 본 적이 많았지만 정작 생선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나 여태껏 곱게 살았네'하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잊고 지냈던 그녀가 떠올랐다.
"난 생선이 너무 징그러워. 꼭 남편보고 대신 손질해 달라고 할 거야."라고 말하던.
그녀는 대학교 선배였다. 그녀는 음대로 나와 전혀 다른 전공이었지만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는 인연이었다. 당시 대학생으로선 엄청 고가 화장품이었던 안나수이의 아이섀도와 파우더, 립스틱 등 전 라인을 화장대 한가득 전시해 두고 학교 갈 때마다 몇 시간씩 앉아 화장을 하던 그녀는 선크림도 바르고 다니지 않았던 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지방 부농의 외동딸이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방에서 아무리 잘 나가는 집안의 똑똑한 아이 었대도 서울의 콧대 높은 풍파에 바람 든 무처럼 성성하게 조금씩 병들어가는 지방내기들을 나는 여럿 보았다. 그 언니도 그중 하나였다.
음대라는 특성상 아마 '진짜' 공주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가방이며 구두며 심지어 카디건 하나까지도 명품으로 사기 시작했다. 집에서 용돈으로 부쳐주는 돈이라야 아무리 많아도 한정이 있을 텐데 마치 한도 없는 카드를 쥐고 있는 사람처럼 돈을 썼다. 이런저런 브랜드를 자랑해도 비싸다니 그런 줄 알지 그땐 내 코가 석자라 브랜드고 뭐고 관심도 없었던 때였다. 그러다 내가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어 마지막으로 하숙집 몇몇이 모여 같이 밥을 먹었다. 학교 앞에 있는 코다리찜집에 갔는데 그녀가 젓가락으로 코다리를 한번 찌르더니 공주처럼 천천히 말했다.
"난 생선이 너무 징그러워. 나중에 꼭 남편보고 대신 손질해 달라고 할 거야."라고.
그 후에도 많은 대화가 오고 갔겠지만 그 후에 그녀를 다신 만난 적이 없어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말로 남고 말았다.
3년 정도 지난 후, 하숙집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선배 오빠 한 명과 연락이 닿아 회사 앞에서 점심 약속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겨를도 없이 취업을 하게 되어 많은 이들의 소식을 듣지 못해 그 선배를 통해서 여러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기숙사로 간 후로 그녀의 낭비벽은 더욱 심해졌고 알고 보니 카드 리볼빙으로 빚이 엄청나게 생겼다고. 그런 그녀의 화려한 행색만 보고 돈 많은 집 외동딸인 줄 알고 사기꾼 남자가 접근해 와 처음에는 공주님처럼 대해주다 결국 그녀의 오피스텔 보증금만 들고 도망갔다고. 그 후에 자살 시도를 했는데 연락할 사람이 없었는지 병원에서 이 오빠를 보호자로 불러서 모든 전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병원비도 선배 오빠가 다 냈다고 했다. 그러다 퇴원 후 돈이 없어 옥탑방을 전전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부모님께 정말로 머리채를 잡혀 갔다고 했는데 너무 드라마 같아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내가 있던 곳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한 때 그런 마음으로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라는 시를 참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20대에는 이 시를 읽으며 궤도를 이탈하여 짧은 획을 그으며 기꺼이 무언가를 포기하며 자유롭게 살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태양도 지구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만의 궤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별똥별은 아름다운 획을 그으며 궤도를 벗어나지만 끝내 산멸한다는 것을.
그녀는 궤도를 벗어나려는 자유보다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선이 징그럽다 호들갑을 떨면 곰 같은 남편이 와서 대가리를 댕강 쳐주고 내장을 깨끗이 발라 턱 하니 냄비에 넣어주는 그런. 관심과 사람이 누구보다 필요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한번 궤도를 이탈하여 아름답게 산멸해보지도 못하고 그저 끝없는 우주를 한없이 부유했던 것 같아 마음 아프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원래 꿈꿔왔던 삶의 궤도에서 공전하고 있기를 간절해 바라본다. 그리고 생선 손질은 마트에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너무나 깔끔하게 손질과 포장까지 해서 코앞까지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이기를.
PS. 나는 내숭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내 손으로 고등어의 대가리를 댕강 쳐서 내장을 모조리 빼낸 후 고등어 조림을 만들었다. 똥손 남편이 아닌 아파트 요일장에 늘 오시던 생선 가게 사장님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고등어 조림은 고등어가 기름기 한 톨 없이 퍽퍽하고 비린 데다 잔가시도 너무 많아 다들 무가 제일 맛있다 할 정도로 최악이었다. 우린 치앙마이에서 다신 고등어 조림을 해 먹지 않기로 했다.
Photo: Sean Robert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