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어이 비싼 망고를 사 먹는 이유
저렴한 물건을 사는 비결 중의 하나는 노동력이 '최소화'된 것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렇다. 쉽게 풀이하면 다른 이의 노동력을 빌리는 대신 내 노동력을 갈아 넣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주부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대부분의 항목에선 그렇지만 치앙마이에서 '망고'만은 예외다. 지금은 망고철이 조금 지났지만 한창 철이었을 때는 kg다 20밧이면 살 수 있었고 지금도 30밧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kg당 49밧이나 하는 망고 전문점에서 예쁘게 깎아 놓은 것을 사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망고를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 먹는다라기 보다는 사 먹인다는 표현이 맞다. 망고 귀신 남편에게!
여기서 지내다 보면 여행자였을 때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정보를 듣고 경험하게 되는 행운이 생긴다. 올해 6월, 딱 3일 간만 열렸던 망고 축제도 그중 하나였다. 치앙마이 도청 마당에서 열렸는데 위치도 관광지에서 떨어져서 여행객이라면 절대 오지 않았겠지만, 이것은 행운인가(돌이켜 보니 불운이었던 것을!) 우리 집 바로 건너편이었다. 망고 귀신 남편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우리가 간 날은 마지막 날인 데다 축제가 끝나기 2시간 전이었다. 망고가 몇 개 남아 있지 않거나 빈 매대도 많았다. 실망하던 찰나 조금 안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북적대며 줄서서 사가는 망고집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인기가 많았던 탓인지 망고도 아주 넉넉히 쌓아 두었다. 게다 가장 놀라운 건 망고의 가격. 매주 가는 요일장에서도 kg당 20밧에 구입해 먹었는데 흔히 먹는 노랑 망고도 아닌 마하차녹이라 불리는 고급 레드 망고도 모두 kg당 10밧란다! 집에 망고 먹는 사람이 남편 밖에 없음에도 가격에 눈이 뒤집혀 담고 보니 노란 망고, 빨간 망고 각각 3킬로씩 6킬로나 사 버렸다.
첫날 어른 팔뚝만 한 망고를 깎아 먹으며 우리의 알뜰함을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
망고를 깎는데 좁쌀만큼 작고 하얀 것들이 스물스물 손가락 사이를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실눈을 뜨고 자세히 봤더니 세상에나!!!!!! 망고 가운데 하얀 애벌레가 가득했다!! (신이시여! 대체 왜 치앙마이에서 너무 자주 이런 시련을 안겨 주시는 건가요!! 나 울어~~)
http://brunch.co.kr/@happyfinder/31
'담대한 아줌마'인 나는 멈추지 않고 다음 망고 가운데를 서걱 베어냈다. 결과는 같았다.
3킬로 모두!!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노안이 왔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애벌레가 가득 든 망고를 정성스레 깎아 이제 막 노안이 온 남편에게 먹일 뻔 하였다. 아니면 남편이 그날 나에게 뭔가 밉살만한 행동을 하였다면 '미필적 고의'로 과 비타민과 함께 단백질까지 섭취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곱고 착한' 아내이므로 나의 정신적 고통을 뒤로 한채 차분히 남아 있는 모든 망고를 버렸다.
6킬로 모두!!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앞으로 망고를 먹고 싶으면 직접 '똥손'으로 깎아 먹거나 망고 전문점에서 예쁘게 깎아 도시락에 담아 주는 것으로만 사 먹을 것을. 나는 트라우마가 생겨 영원히 망고를 깎을 수 없게 되었음을 선언했다.
PS. 고급 정보를 하나 전하자면 센트럴 에어포트 지하에 'SAUN'이라는 아주 작은 망고 디저트 전문점이 있다. 거기에서는 망고 음료나 요거트 같은 생망고 디저트도 먹을 수 있지만 1kg당 49밧에 질 좋은 망고도 직접 깎아 준다. 흔한 노란 망고가 아니고 아투이투나 꾸어퍼이 같이 슈퍼에서는 비싸게 파는 레어 품종의 망고도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니 2천원만 더 쓰면 내 손도 내 입도 즐거울 수 있다.